섬찟한 상상
혼자 카피 초고를 쓸 때가
혼자 원고 초고를 쓸 때가
혼자 아이데이션을 정리할 때가
그게 오롯이 내 것일 때가
공개하고 수정되고 실현되고 팔리고
그럴 때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혼자 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포박되고 감금되어 있을 때가
제일 좋다
업무시간으로 성과 과시하는 애들이랑
같이 일하면 정말 피곤하다.
사슬 같은 대화들
섬찟한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내일 제대로 깨어 있기 위해서
지금 잠드는 게 옳다는 진실이 지겹다.
한 가지 프로젝트에 다수가 골몰하는
풍경 속에 끼어 있다 보면
개인성도 희미해지고
결과에 대한 애착도 흐려진다.
그저 끝났으면 하는 애처로운 심정으로
쓰고 지우고 반복하며 반응한다.
악은 무지에서 피어나고
무지는 오랜 기간 합리화를 통해
누적되고 화석화된 거라
구제 방식이 없어 피해를 알면서도
막을 수 없다.
물리적 거리를 좁힐 수 없다면
남은 일은 예상 가능한 화마와
예측할 수 없는 악재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고통받는 것뿐이다.
증오의 대상은 늘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상력이 더해져
미래의 스트레스까지 대출한 후
압류 딱지처럼 심신 여기저기 붙곤 한다.
이미 겪은 일 때문에
아직 겪지 않은 일까지 몰아서
힘에 부치게 한다.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이고 알면서도
피하지 못한다.
쓰러질까 봐 서 있는다
글, 그림, 생각 등
내게서 나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신뢰가 점점 옅어진다.
시도조차 꺼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