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고분고분 더 써줄걸
피티 할 적마다, 과정 과정의 온갖 부정적인 변수가 할퀴고 지나간다. 버틴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게 웃음이 나올 정도로, 바닥의 바닥의 깊이로 소진되고, 마저 소진된다. 이번 피티는, 근 2주 트윗의 개수에서 드러나듯 활자화가 덜 이뤄질 정도의 슬픔과 고통이었지만,
어찌 보면 또 그만큼의 체념이기도 했다. 저항의 소용이 사라진 것들. 차라리 분노와 증오로 휘발시키는 게 효율로 다가오는 것들. 개선과 희망은 원래 없었고 앞으로도 불가능한 이야기.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라면 써달라는 대로 더 고분고분 더 써줄걸 그랬나. 늦었다.
앞으로도 쉼 없는 폭언과 폭행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마음과 다른 말을 하고 원하지 않는 글을 쓰며 나아질 리 없는 것들에 대해 한탄하며 시간의 속도에만 의지해야 할 것이다. 끝나면 끝나니까. 누가 사라지든 폐허가 되든 결과 실망스럽든. 지나갈 테니.
버티는 삶에 대해 긍정을 표한 적 없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과 같아서. 다만 선택의 여지가 죽거나 죽이거나 떠나거나 버티는 것이라면 맨 나중의 것에 걸터앉아 있을 수밖에 엇을 뿐이다. 눈 앞에서 찢기는 것들을 관망하고 때론 관조하며 한철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