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하고 무참하게
정치계를 비롯한 조직들의 행태를 복기해보면 인간들이 모여 자기편 다수의 이익을 도모한답시고 뭔가 해보려는 모습이 애초 불가능이 예정된 시도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인적 노력이 수반된다 하여도 개별적 욕망을 통제하기 어려워 매번 허망하고 누 추한 꼴이 된다.
인류가 실수와 사고, 충돌과 모험을 통해 점진적 발전을 이뤘다지만 정녕 늘어난 개체수에 비례하는 안정과 평화에 도달하긴 한 걸까. 과거보다 고통의 비율이 엷고 넓게 퍼진 건 아닐까. 한 가지 개선을 위해 두 가지 문제를 만들고 수습을 반복하며 시간을 낭비한다.
비극을 망각하다 작은 도약에 자족하고 다시 무너지고 무너지고 더 무너지고 사고가 터지고 다들 잊어버린 과거의 망령들과 싸우고 싸우며 타인의 이익과 허황된 권력욕을 염원하다 자멸한다. 시스템은 과대한 의미부여가 학습된 다수의 믿음으로 축조된 판타지.
변하지 않고 변할 수 없는 것들을 변화시켜보겠다는 지속된 노력은 자체만으로 숭고할까. 눈먼 자들에게 보여주고 귀 먼 자들에게 들려주는 시도가 효율의 관점을 떠나 가치가 있긴 한 걸까. 그냥 계속하는 거지.라는 위안은 누굴 위한 걸까. 변화의 대상에 자긴 없는데.
실망이 늘면 기대도 없다. 희망을 계속 베팅할 만큼 생은 길지 않다. 몸은 쇠약해지고 욕망만 쭈글거리며 뼈와 살을 지탱할 것이다. 자기 믿음에 동의한 이들이 모인다고 그 믿음이 옳고 이롭다고 느끼는 착각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같이 죽는 법들이 매일 탄생한다.
어쩔 수 없잖아는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잖아의 대체어. 직면한 재앙을 죽이지 못해 늘 더 많은 다른 재앙들을 번식시킨다. 이야기되지 않는 화염 속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생이 말소된다. 목숨을 건진 이들이 다음 희생을 계획한다. 무감하고 무참하게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