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으로 얕고 비겁한

더 깊이 생각하기를 주저하고

by 백승권

언젠가부터 더 깊이 생각하기를 주저하고 의도적으로 멈춘 것 같다.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개인이 이행해야 할 윤리적 측면과 도덕적 딜레마, 사회적 책임과 맞닥뜨리게 되고 정면돌파 뒤에 따라오는 건 늘 허무와 배반이라는 점이 경험에 의해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성취보다 물리적인 피해가 뻔히 예상되기에 애초 생각의 가속 자체를 끌어내지 않았다. 생각의 힘이 강해질지언정 이를 이행하지 않은 주체(나)에 대한 비난까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인간 됨됨이를 완성하긴 싫지만 지켜온 것을 더 지키고 싶다.
결과는 지금과 같다. 더 고민하지 않아도 고민할 일들은 계속 일어나고 작은 고민들을 해치우다 보면 오랜 고민들은 기약 없이 뒤로 밀린다. 더 바쁘고 체력은 고갈되지만 익숙한 환경 속에서 적당한 나태에 자족한다. 기본적 성실함과 추진력을 갖추되 모험을 줄인다.
세상 모든 사건에 몸과 맘을 쏟을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소중한 것들과 나눌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한정된 자원을 켜켜이 쪼개어 배분한다.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적을 두지 않고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매번 판단한다. 생각이 깊어지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온전히 지켜나가야 할 사상들이 많아졌다는 것일 수도, 오랜 생각들이 알고 보니 오래 머리를 싸맬만한 게 아니라는 것일 수도, 이미 완전히 굳어져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을 게다. 몇 해 전의 나와 얼마나 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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