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를 본 남자, 가난한 천재 수학자의 선택

맷 브라운 감독. 무한대를 본 남자

by 백승권

생경한 감정 만으로 글을 이어가는 일은 어렵다. 이런 감정을 느낀 배경에 대해 열거할 수는 있지만 연결점을 쉽사리 찾을 수 없을 때 글쓰기는 난처하다. 하지만 세상에 어떻게 익숙한 경험과 느낌으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를 긍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낯선 삶에 대한 발굴과 이해를 점진적으로 가능하도록 학습시켜줬다는 점이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인물과 사건들. 삶은 그만큼 좁아졌을 것이고 생각의 폭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라마누잔(데브 파텔)은 인도인이었다. 그가 지닌 수학에 대한 지식을 알아줄 곳은 영국이었다. 그는 엄마와 아내를 뒤로 한채 배를 탄다. 휴대폰 없는 시절이었고, 편지로만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물론 그조차도 불가능으로 이끄는 단계들이 많았다. 영국에서 하디 교수(제레미 아이언스)를 만난다. 하디 교수를 비롯한 저명한 학자들을 마주친다. 인도놈 주제에 머리 좀 쓴다고 우리처럼 역사를 바꿀 지식인 무리에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니 당장 누추하고 더러운 너희 동네로 꺼져.라고 말하는 듯한 곱지 않은 시선과 대우들. 라마누잔은 기존 이론을 뒤집을 혁신적인 공식을 도출했고 여기에 가능성을 본 하디 교수는 그와 함께 공식을 보완 및 개선해 나간다.

평생을 수학에 바친 하디 교수였다. 그에게 수학이란 삶 자체였고, 이를 위해 어떤 대인관계도 사랑도 끼어들 수 없었다. 하지만 라마누잔은 사정이 달랐다. 그에겐 고국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다. 편지는 오지 않았고 그는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수학 공식을 풀어가며 밤을 지새웠다.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 둘은 서로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국적과 피부색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다. 매번 부딪치고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재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재능 안에서 둘은 합의한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을 인도인 최초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추천하고 등록시킨다. 완고한 성향의 동료 학자들을 향한 지난한 설득의 과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타지에서 독거하며 학문에만 몰두한 라마누잔은 급격하게 쇠약해진다. 천재 수학자라는 영예를 안고 돌아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다. 그가 남긴 공식들은 현재 블랙홀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무릅쓰고 몰두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다른 식으로 말하면 라마누잔이 미쳐있었음을(학문에 기꺼이 미칠 만큼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디 교수가 이런 놀라운 공식에 대한 원천을 물었을 때 신의 목소리를 받아 적은 것이라고 답했다. 종교에 대한 끝없는 신념과 수학이라는 고도화된 이성적 이해가 무참하게 충돌한다. 끝을 알 수 없는 같은 목적으로 가는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방식. 하디 교수는 묵살하지 않는다. 이미 천재성이 드러난 청년 수학자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드러난 새로운 공식은 기존 지식인들을 놀라게 하고 한없는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된다. 이런 성취는 물론 기록으로 남고 후손들에게 추앙된다. 하지만 사랑의 희생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용기일 것이다. 사랑을 희생시키더라도 자신의 천재적 성취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과감한 선택에 대한 용기. 이게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불명예는 물론 다시 가난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두려움. 궁지에 몰린 채 그는 병마와 싸우며 이론을 완성했다.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보내며 아내는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없는 선택이다. 내게 부여되지 않은 재능이기에 단언하기엔 무리지만 난 사랑하는 사람을 한없이 기다리게 할만한 이런 결정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킬만한 수학적 논리력이 없다. 다른 삶, 다른 선택, 다른 끝. 생략되고 편집된 장면으로 완성된 영화라는 불완전한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삶을 경험하는 일은 이처럼 모호하고 부유하는 감정들을 낳는다. 나는 그가 아니고 그의 삶이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기회와 재능을 부여받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능가하는 영예는 없다.







어떤 영화들은 이렇게 글을 쓰게 만듭니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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