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즈 킹덤, 판타스틱 가출백서

웨스 앤더슨 감독. 문라이즈 킹덤

by 백승권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문라이즈 킹덤을 보고 며칠 동안은 이렇게 밝고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스타일리시하고 영리하고 발칙하며 위트 넘치고 감각적이며 미장센이 뛰어나고 귀여우며 색감은 환상적이고 대사는 시종일관 만화 같고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피겨 같은 굳이 스토리텔링과 시대적 배경과 영화사에 차지하는 유의미를 분석하고 평론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이런 영화가 있을까 싶었다.


복기해보면 두 소년소녀의 가출은 (당연히) 발각되고 둘은 당연히 (제자리가 아닌 것 같지만 물리적으로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총을 훔치긴 했지만 이걸로 도심을 휘저으며 행인과 경찰을 마구 쏴 죽이고 결국엔 쫓기고 쫓기다 자신들도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는 엔딩으로 맺을 순 없는 노릇이다. 특히 영화라는 장르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 왔던 웨스 엔더슨의 작품이라면.


수정 가능한, 회복의 관계. 아름다움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소년과 소녀을 위한 희망을 지닌 세상.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일랜드 소년 샘(자레드 길만)은 소속된 보이 스카우트(카키 스카우트)에서 탈출한다. 소년의 곁에는 서로 한눈에 반한 시크하고 당돌한 매력의 소녀 수지(카라 헤이워드)가 곁에 있다. 주변의 세계가 발칵 뒤집힌다. 둘을 찾기 위해 지인과 지역, 둘이 소속된 시스템이 총동원된다.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 부상자가 발생하고 사랑은 커진다. 점점 드러나는 비밀과 안타까운 사연들. 소년소녀 주변의 세계는 안전하다 여겼던 울타리 밖으로 탈출한 소년소녀를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을 동조하며 돕기 위해 힘을 합친다.


해피엔딩의 동화. 소년에겐 새로운 보호자가 생긴다. 그는 보이스카우트 제복을 벗고 경찰관 제복으로 갈아입는다. 사랑은 지켜지고 더 이상 누구도 다치지도 길을 잃지도 않는다. 상징과 기호의 해석은 귀찮다. 저게 다일 수도 있다. 소년의 경찰 제복이 조금 걸릴 뿐이다. 시스템이 지켜주지 못했던 소년이 시스템을 벗어나고 시스템에게 쫓기다가 시스템과 화해하고 끝내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니. 소년의 새로운 보호자인 보안관(브루스 윌리스)은 소년과 함께 도망쳤던 소녀의 어머니와 외도 관계였다.


동화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의뭉스럽게 다가오지만 한 꺼풀씩 벗겨보다 보면 실상은 첫인상과 다를 경우가 많다.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싱스트리트의 엔딩이 떠오른다. 둘이 함께 탄 보트는 금방이라도 성난 파도에 전복될 것만 같았고 영화는 거기서 어떤 암시도 주지 않은 채 끝이 난다.


영화적 교훈과 현실적 한계의 표출 사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완전한 공존은 가장 지루할 것이다. 결국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분명한 건, 문라이즈 킹덤은 근래 본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과 캐릭터들의 클로즈업된 표정으로 가득한 영화라는 점. 모든 장면을 수천 장의 엽서로 만들어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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