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우는 남자

김지운 감독. 밀정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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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운다. 남자는 시체를 본 직후였다. 시체를 거적으로 덮은 수레가 지나갔고 수레를 끄는 남자와 몇 마디를 나눈 후 남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잠시 멈춘 수레에 실린 시체가 궁금했다. 불안했다. 거적 밑으로 삐져나온 시체의 작은 오른손을 본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여자. 알지도 모르는 여자. 남자는 거적을 들춘다.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바람도 없는 땅 위에서 몸이 휘청인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울음과 괴성이 섞인 소리가 남자의 안면에 휩싸인다.

남자(송강호)는 친일파. 시체는, 거적에 덮인 죽은 여자는, 남자가 알고 있는 그 여자의 정체는 의열단. 조선이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고 독립을 향한 저항과 지배를 위한 탄압이 어지럽게 공존하는 시대였다. 남자는 한때 의열단의 핵심이었던 친구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자결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남자는 한때 거적 밑의 여자를 심문하며 두려움에 가득한 얼굴을 시뻘건 인두로 지졌었다. 남자의 눈과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여자(한지민)의 비명은 모든 공기를 찢어 갈기고 있었다. 상부의 명령에 의한 일이었고 자신의 생존에 의한 일이었으며 동족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었다. 남자의 뿌리는 조선이었지만 현재의 위치는 일본이었고 두 나라 사이에 균형은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올린 곳에 맞게 행동해야 했고 이는 조선의 국권 회복을 부르짖는 자들의 존재를 말살하는 일이었다.

그는 명분이 있었지만 악마가 될 수는 없어서 그렇게 모진 인간이 되기에는 심성이 연약하여 의열단을 돕기로 한다. 물론 자신의 입지가 최소한 지켜지는 선에서 이뤄져야 할 일이었다. 그 사이 총격과 폭력, 살인이 일어나지만 그는 그때만큼은 친일파가 아닌 조선인을 돕는 조선인이었다. 의열단이 계획했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그는 자신을 계획에 끌어들인 김우진(공유)과 최후의 대화를 나눈다. 그 최후의 순간에 의열단 김우진은 친일파가 아닌 조선인으로서 남자 이정출을 신뢰하고 의지한다. 재판정에서 김우진과 이정출이 나란히 섰을 때 이정출은 김우진을 부정한다. 자신은 일본에 영원히 충성할 것이며 김우진 같은 반란 세력과는 차원이 다름을 눈물과 열변으로 호소한다. 그렇게 김우진은 독방에 감금되고 이정출은 풀려난다. 그곳에서 마주한 여자의 시체였다. 자신이 도왔던 의열단이었고 자신이 죽였던 의열단이었다. 변절자, 가해자, 결국 살인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동족의 생명을 빼앗는 인간. 그게 자기 자신 이정출이었다. 그는 수레가 떠나고도 한참을 울었다. 시체는 말이 없었다.

인간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조선인 이정출은 일본 식민 환경에 적응했고 살아남았다. 그 대가로 친구와 동료를 잃었고 자신마저 부서졌다. 아무리 운다 한들 죽은 자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남은 자들은 남은 시대를 수습한다. 남은 자들 중에 이정출 같은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총 한번 쏘지 못한 시골뜨기들이 조국의 독립을 도모한다며 모여 만든 의열단 속에 밀정은 늘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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