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더 다크, 도둑들아, 그 집에 들어가지 마오

페데 알바레즈 감독. 맨 인 더 다크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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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청년이 홀로 사는 노인(스티븐 랭)의 집을 턴다. 그 집에 돈이 좀 있다는 소문을 알고 난 후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노인이 앞을 못 본다는 점이었다. 혼자 살고, 앞을 못 보는, 더군다나 노인이라니. 도둑질에도 서열이 있다면 저열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청년들에겐 좋아하는 여자가 같이 털길 원한다는 거나 딸과 같이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거나 아니면 그냥 일확천금을 원한다거나 등의 각자의 이유가 있었고 추진하기로 한다. 그리고 노인을 포함, 죄다 죽거나 다친다. 남의 돈 털려다 뼈와 살은 물론 인생까지 털린다.

자는 사이 돈을 빼 오면 되겠지 싶었을 것이다. 모두가 잘 시간, 잠입한 노인의 집은 폐가와 다름없을 정도로 음침하고 폐쇄적이었다. 눈먼 노인을 깨울 정도로, 세 도둑의 침입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노인이 자기 집에 타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살육은 시작된다. 총은 빼앗기고 빼앗긴 이의 두개골은 박살 난다. 이상한 대결 구도였다. 수적으로 나 무장으로나 우세할 거라 여겼던 구도는 단숨에 뒤집힌다. 노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 뜬 이들보다 더 우세하게 상황을 장악한다. 이런 스코어로 가다간 홈 코트 콜드게임으로 끝날 기세였다. 반격은 필요하지 않았다. 도둑들에게 필요한 건 생존이었다.

절벽에 매달린 남자가 눈앞에 꿀을 빨다가 낙사했다는 이야길 들은 적 있다. 도둑들은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진작에 밖으로 나갔겠지. 도둑들은 남의 집이라는 스테이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무참하게 폭살당한다. 2층 1층 지하 어디로 도망가도 눈먼 노인의 손아귀였다. 게다가 그에겐 그들을 제압해야 할 사연까지 있었다. 제 발로 들어온 희생물이었고 그들을 어찌한다 한들 빠져나갈 출구는 얼마든지 있었다. 게다가 노인은 객관적 약자의 위치였으니까. 공간과 어둠, 모두 노인의 편이었다.

나쁜 놈과 더 나쁜(나쁘게 보이는) 놈의 대결은 흥미롭다. 감정이입의 대상이 분명치 않고 충돌의 연쇄 작용을 통해 스토리가 진행된다. 맨 인 더 다크의 도둑들은 철저한 약자로 시종일관 어둠 속에 쫓기고 두려움에 떨다가 처참한 폭력에 시달린다. 노인과 그의 딸에 대한 사연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노인은 더 이상 게임에서 이겨야 할, 처단의 명분까지 획득한다. 약자의 천금을 노린 도둑들의 상대는 눈먼 독거노인이자 이제 안타깝게 딸을 잃은 아버지이기도 했다. 날이 밝고 시체와 피투성이만이 남았을 무렵 모든 미디어는 노인의 편에 선다. 살아남은 자는 이 게임이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그래, 남의 돈 먹기가 저렇게 힘들지.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었다. 생명을 뒤흔드는 불행은 재수 없어서 걸린 게 아닌 모든 바보 같은 결정의 총합이 이뤄져서 생긴 거란 것도. 단 하나의 제어장치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그들은 다른 전개로, 보다 덜 비극적인 결론으로 뻗어 나갔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이성적이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결말이 긍정적일 경우 얻어질 최대한의 이익, 그 최소한의 확률을 전부로 확대하며 바라본다. 죽음은 그렇게 온다. 남의 돈 쉽게 먹으려는 어리석은 계획을 위한 수많은 바보 같은 결정이 합쳐져 스스로의 결계를 해체시킨다. 멀리 본다면 수많은 죽음들은 이처럼 느린 속도의 자살과 다르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하지만, 도둑들을 초대한 건 눈먼 독거노인이 아니었다.




영리한 영화에 대한 흥분의 찬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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