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감독. 립반윙클의 신부
관계란, 눈을 뜬다고 보이는 게 아니다. 곁에 있다고 만져지는 게 아니다. 실물이 아니다. 때론 직접적이며 말초적인 감각의 산물이 이상적 관계의 전부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애초 정의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어져 있다는 초라한 믿음과 거기에 의지하는 외줄 같은 연약함. 끊어짐이 선언되는 순간은 늘 당황스러웠다. 나의, 우리의 관계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숨이 끊길 듯한 관계의 단절이, 예상하지 못한 일상과 남은 생의 파괴가, 그리고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내가 남게 될 수가 있지. 난 어디에 있는 거였지, 대체?
미나가와 나나미(쿠로키 하루)는 목소리가 작았다. 행동도 작았고 신장이 큰들 누구 앞에서도 더 낮고 작아지는 소녀였다. 교사였던 그녀를 학생들은 우습게 봤고 못된 장난에 휘말려 파면당하기에 이른다. 결혼을 앞둔 그녀였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 채 몇 번의 채팅으로 이어졌던, 온라인 쇼핑과 같은 연애. 결혼은 장바구니 담기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결혼은 그녀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많은 이들과 섞여서 벌이는 잔치였으니까. 나나미에겐 가족과 친지가 온전하지 않았고 신랑 측과 비교되었다. 채팅에서 알게 된 이(아무로 유키마스)를 통해 하객 알바를 동원하고 결혼 후 들통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을 거라는 심증과 물증을 지닌 시기였다. 결혼은 거기서 끝난다. 어떤 이유도 뚜렷하거나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택시를 타고 어둠을 지나 처음의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구슬프게 운다. 짐가방을 끌고 터덜거리며.
완전하게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불안했다. 다시 휴대폰을 열고 도움을 요청한다. 일상과 관계는 리부팅된다. 하객 알바를 고용했던 그녀는 하객 알바가 되고 그곳에서 연기자들을 만난다. 실제 자신과 다른 역할로 살아가는 사람들. 몇 시간 동안 누군가의 가족과 친척으로 속이며 안심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곳에서 사토나카 마시로(코코)를 만난다. 무척 활달하고 행동이 크며 주저하지 않아 보이는 겉으로는 나나미와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 둘은 소울메이트처럼 각자 삶의 일부가 된다. 도시라는 불안한 자궁 속에서 쌍둥이처럼 달싹 붙어 다닌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식탁에서 먹는다. 같은 색의 드레스를 입고 같은 자동차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내달린다. 거기서 둘은 같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가 자신 같았고 자신이 서로 같았다.
날이 밝고 그곳에서 하나의 생명이 꺼진다. 예정되었던 끝이었고 자신 외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끝이었다. 장례식장에서 하객 알바들은 다시 모였고 그곳에서 죽은 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가 선택한 역할이 자기보다 더 중요했던 사람. 선택한 역할을 위해서라면 하나뿐인 가족도 부서질듯한 몸뚱어리도 모두 내던져버릴 수 있었던 사람. 한없이 외로웠고 그래서 자신이 죽어가는 날들에 같이 할 친구를 원했던 사람. 그 친구와 함께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도 부담할 수 있었던 사람. 나나미는 죽은 친구를 담은 상자와 함께 죽은 친구의 잊혔던 가족을 찾아간다. 한때 죽은 친구를 체내에 품었던 사람. 엄마.
엄마는 포르노 배우를 선택한 딸을 말리기 위해 죽도록 때린 적이 있었다. 그날로 모녀관계는 영영 단절이었고, 다시 돌아온 지금 한 명은 고요한 상자 안에 있었다. 술을 따른다. 딸이 그토록 마셨던 술. 옷을 벗는다. 딸이 선택했던 역할. 딸이 살았을 적 그랬던 것처럼, 딸의 그런 선택을 이제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고 싶다는 듯이 엄마는 처음 보는 손님들 앞에서 걸치고 있던 모든 옷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떠난 딸을 이해하려고 한다. 가득 채워진 술을 들이켜는 나나미. 친구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이제 와 못 마시는 술을 들이켠다고 뭐가 달라질까. 나나미는 웃음과 울음이 범벅된 얼굴로 헝클어진 옷차림으로 떠난 이를 추모한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죽은 자를 닮으려 노력한다.
SNS로 시작된 관계의 참상들. 비극과 비극을 잇는 도중 행복은 찰나였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스스로를 정의하지도 못한 채 서로 엉켜있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동안 관계는 사정없이 끊어져 갔다. 나나미는 무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중 제대로 대답이 내려진 것은 너무 적었다. 너무 적은 만큼 너무 고통스러웠고 걸음을 내딛는 순간순간 주변은 모두 폐허로 변해갔다. 가장 다른 줄 알았던 이가 알고 보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여정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밤, 누군가 죽기 전날 밤, 그 시각만이 나나미가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새벽과 함께 장례식장 직원이 찾아올 줄도 모르고.
모두가 길을 잃는다. 누군가는 물어보며 헤매고 누군가는 홀로 헤맨다. 같이 헤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관계의 시작이고 결국 혼자 겪을 일을 둘이서 감당하는 또 다른 고통과 힘겨움의 시작이다. 서로 다른 의도를 지닌 사이가 하나의 목적으로 제대로 나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언젠가 넘어지게 되어 있고 회복이 더뎌질수록 현실은 멀리 달아나버린다. 자신의 속도도 알기 힘든데 시간과 환경에 맞춰서 살아가는 게 가능한 건가. 모두가 과거에 살며 미래를 꿈꾼다. 누군가는 과거에 머무르며 자신의 속도로 죽어가고 누군가는 앞서고 있다고 착각하며 타인의 속도에 맞춰 죽는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대화명이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실제 '립반윙클의 신부'를 만난 사람들도 진짜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아는 척하며 시간과 장소를 잇는 것. 나나미는 모든 관계에 실패했다. 성공을 욕망하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관계의 본질을 누구보다 제대로 체감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눈을 뜨고 있다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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