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사이

윤가은 감독. 우리들

by 백승권

친구는 어려운 존재다.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지만 주변인 중 일부를 특정 카테고리에 집어넣어 '친구'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건 평생의 어려운 일이었다. 책과 드라마, 영화 등에서 자신과 무리를 친구라 명명하는 장면을 보면 간지러웠다. 회사에서 흔히들 하는 이름 뒤에 직급 붙이기 같았다. 김대리, 이과장, 박차장, 조부장을 김친구, 이친구, 박친구, 조친구라고 불러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오랜 시간 곁에 머무는 지인은 필요했다. 가족과 구분되어야 했고 말이 통하거나 생각이 통하거나 뭐 다 집어치우더라도 뭔가 혼자 아쉬울 때 이런 심정을 공유하고 공감을 얻고 싶은 대상이 필요했다. 사랑에 빠질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건 또 다른 복잡한 관계일 테니까. 그게 친구 같은 게 아닐까라고 여기며 그렇게 대했다. 개인적 경험과도 맞닿아 있지만 시선을 밖으로 돌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친구를 정의하고 반응하고 대하는 방식은 비슷비슷했다.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부러 무리를 이루어 같이 다니며 웃고 떠들고 서로의 일거수일투족과 비밀을 공유하고 뭔가 새로운 게 생기면 자랑하고 같이 슬퍼하기도 하고 나눠 먹기도 하고 그렇게 외로움을 해체시키는, 어떠면 생존본능에 기인한 존재이자 커뮤니티.

선이(최수진) 에겐 없었다. 그런 친구가.

조금 조용하고 조금 차분하고 조금 말갛게 보이는 밝고 명랑함도 겸비한 잘 눈에 띄지 않는 초등학생 소녀. 선이는 혼자처럼 보였다. 집에는 장난꾸러기 남동생도 있고 맞벌이를 하는 엄마도 있고 공장을 다니며 술을 자주 먹는 아빠도 있었지만 학교에서만큼은 선이는 혼자처럼 보였다. 책상 옆자리도 비어 있었다. 그런 선이의 옆자리에 전학생 지아(설혜인)가 앉는다. 선이와 지아는 친구가 되어간다. 선이에겐 지아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휴대폰도 없었고 억지로 떠밀려 가는 학원도 가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서로가 무척 소중하고 매일매일 연락하며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것을 안다. 독점하려고 한 적은 없었지만 지아는 선이보다 붙임성이 강했고, 그것은 곧 선이 외에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선이에게는 지아뿐이었지만 지아에겐 더 많은 친구들이 생기고 선이는 자신이 그들 중 한 명의 친구라고 여긴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지아는 소중했으니까. 원하는 김밥을 싸주고 싶었고, 집에서 재워주고 싶었고, 같이 어디든 뛰어놀고 싶었다.

균열이 시작된다.

나이를 불문하고 관계란 맺기보다 끊어지는 게 더 쉬웠다. 지아는 새로운 친구들과도 가까워져야 했고, 그 무리에서 이탈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과거 지아가 전학을 오기 전 당했던 아픈 경험에 기인한 선택이었고 상대적으로 선이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친구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처럼 지아도 선이를 소외시키기를. 그리고 공격하기를. 선이는 지아에게 잘 보이려 휴대폰을 사달라고 조르고 엄마의 돈을 훔쳐 지아가 원하는 것 같은 '비싼' 생일선물을 사기에 이른다. 하지만 지아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지아 없는 선이는 다시 혼자가 된다. 하지만 동맹 역시 곧 깨진다. 지아가 새로운 무리의 우두머리인 보라(이서연)의 등수를 앞지른 순간부터. 지아는 지난 학교에서 당한 일을 여기에서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두워진다. 선이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어색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여기에 덮치는 각자의 가정사. 아이들 세계의 모든 혼돈은 결국 그들 자체의 중력이기보다는 부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지아와 선이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아는 떨어져 사는 부모의 정체를 거짓말로 가려왔고 선이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가 조금 야속했다. 둘의 비밀 아닌 비밀이 우연과 어른들의 입에 의해 서로에게 알려지고 그게 모두가 있는 교실 안에서 모두에게 퍼졌을 때, 서로를 향한 창과 칼날이 되었을 때 둘은 돌아올 길을 예정하지 못한다. 이혼 부모의 자녀와 알코올 중독자 자녀의 대립. 태어난 건 죄가 아니었지만, 세상이 흔히 말하는 부모의 얼룩은 곧 자식이 뒤집어써야 할 재가 되었다. 서로가 뿌린 재투성이가 된 채 둘은 복도에 서서 혼난다. 낯설어진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선이는 다시 지아에게 다가간다. 이건 지아의 입장을 선이가 더 깊고 넓게 이해한다거나 지아가 선이에 비해 불우해 보여서가 아니었다. 선이는 자신이 당했던 무리들이 개인을 고립시키는 방법으로부터 지아를 보호한다. 용기 내어 변호하고 다시 지아를 향해 망설망설이는 입술을 연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사이가 있다. 각자가 원하지 않아도 끌어당기듯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사이. 지아와 선이는 각자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고립을 비슷하게 겪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경험했다. 남들과 어른들이 친구라고 부르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난관이 있었지만 결국 비슷한 시공간 안에서 다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기도 했고 인정받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위로받고 싶었다. 어른들이 정한 기준의 높낮이가 서로에게 달랐지만 둘의 균형을 크게 좌우하지 않았다. 둘은 적어도 서로가 필요했다. 자신을 혼자 두지 않고 싶었으니까.

윤가은 감독의 장편 우리들은 결코 (친구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모든 눈빛과 움직임, 선택과 갈등, 대사와 표정들이 온통 새롭게만 느껴졌다. 영화는 애초 친구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려는 목적 자체가 없었고 난 그 안에서 너무 다른 듯 완전히 같은 두 아이를 내내 지켜보았다. 아랑이가 계속 떠올라서 눈과 귀를 뗄 수 없었다. 아랑이도 언젠가 스스로 숙제를 할 나이가 될 테고 홀로 문방구에 들어갈 때가 될 것이며 친구들이라 불리는 이들과 관계를 맺고 선생님에게 이름이 불리며 생일 카드를 만들거나 엄마와 아빠에게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때가 올 것이어서. 아직 오지 않은 시기이고 미래이자 나와 우리에겐 겪지 않은 감당 해야만 하는 새로운 현실이다. 대다수의 소녀들이 겪는 저런 과정과 마주했을 때 아랑이는 어떤 말과 표정으로 받아들이고 선택할지 궁금해졌다. 아랑이는 지금 13개월이고 선이와 지아의 나이가 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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