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지옥의 건축학

김성수 감독. 아수라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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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의 지옥은 홀로 생성되지 않는다. 긴밀한 의기투합을 통해 지옥은 그 뜨거운 벽돌을 하나둘 쌓아 올리며 자신만의 왕국을 축조한다. 단숨에 완성될 리 없다. 쉬지 말고 관련된 모두가 악행에 가담해야 하고 수가 모자라면 영입해 또 다른 악마로 재생산해야 된다. 일정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빈틈없는 계획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 변수가 발생한다면 가담자들을 희생시킨다. 우두머리는 모든 것을 계획하지만 계획하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 한들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 외에 모두를 죽여 없앨 수 있다. 뭐 대수인가. 누구나 결국은 죽는걸. 움직일수록 빠져드는 수렁 같은 진행과정들. 이용 가치가 있는 자들만 이용 가치가 남아있을 때까지 살아남는다. 아니 두 번 죽지 않는다. 지옥은 산 자들이 활개를 치는 곳이 아니니까. 지옥의 생성자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었다. 산자의 껍질을 입고 칼춤을 추며 각자의 목적을 향해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지옥의 생성은 목적일 수 없었다. 지옥은 그렇게 생성되지 않으니까. 지옥은 죽은 자들의 이룰 수 없는 욕망 사이로 살육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 그로 인해 뿜어 나오는 무참하고도 더럽기 그지없는 기운으로 생성되고 있었으니까. 시체가 많아질수록 생성 속도가 빨라지고 욕망이 방향을 잃을수록 욕망이 실체를 뛰어넘을수록 광장을 넓히기 마련이니까. 모두가 스스로를 끝까지 도륙하고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그때 비로소 지옥은 완성되는 거니까. 아무도 지옥의 완공을 마주하지 못하고 스스로 파올린 무덤 속에서 감지 못한 눈으로 핏물에 젖어 버렸을 테니까. 지옥은 목적을 이뤘고 아무도 끝을 목격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지옥의 건축학.

관계도가 마치 마태복음 1장과도 같다. 한도경(정우성)은 박성배(황정민)를 따르다 김차인(곽도원)을 따르고 문선모(주지훈)는 한도경을 따르다 박성배를 따르고 작대기(김원해)는 박성배를 따르는 한도경을 따르고 도창학(정만식)은 오검사(최병모)를 따르는 김차인을 따른다. 그리고 이 모든 꼭짓점을 잇는 박성배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아수라에 얽힌 모두의 욕망이 합쳐져 인간의 형태로 주조된 듯 기존 인간계의 규율,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역행한다. 마치 철학자처럼 욕망의 분출을 부르짖고 만인 앞에서 천국을 약속한다. 나를 따르는 자 꿈도 못 꿀 막대한 부를 거머쥘 거라고. 그리고 이를 신앙이자 선지자처럼 따르는 이들은 발가벗은 박성배에게 팬티를 입혀주고 젖과 꿀 같은 칭찬을 부어주며 박성배에게 맞서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박성배가 명령을 내리기 전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그가 가져다줄 천국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도경도 그중 한 명이었다. 박성배의 개.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물었다. 아픈 아내가 있다는 사연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씨발'을 숨 쉬듯 내뱉으며 개처럼 굴었고 자신보다 약한 자는 죽일 듯이 때렸다. 강자에겐 죽을 듯이 맞으며 길들여졌고 박쥐가 되어 칼날 사이를 오갔다. 오가면 오갈수록 칼에 찔려 피가 다 빠져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혼자 죽는 게 무서워 후배를 끌어들인다. 후배와 같이 개줄에 묶인 채 누가 더 이빨이 강한 개가 되느냐, 누가 더 심하게 살점을 물어뜯고 누가 더 인정사정없이 박성배의 장애물을 죽이느냐의 경쟁에 돌입한다. 그렇게 한도경은 문선모에게 조차 형에서 '빙신새끼'로 전락한다. 문선모는 늦게 줄을 맨 개로서 분발한다. 아르마니 수트를 빼입고 BMW를 몰 수 있다면 원하고 바라던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면 형을 빙신새끼로 만드는 것도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도 상관없었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그의 동공은 겁먹은 짐승처럼 흔들렸지만 이미 너무 많은 피를 쏟은 상태였다. 그는 지옥의 생성을 위한 신선한 루키였고 박성배가 침이 마르게 쓰다듬는 우수한 케이스였다. 한도경과 문선모가 목숨을 걸고 치고받을 때 그들은 죽을 생각도 서로를 죽일 생각도 없었지만 얽히고설키다 문선모의 목에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뚫어 버렸을 때, 한도경은 깨닫는다. 자신은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 아픈 아내도 자신의 병을 남편의 죄에 의한 징벌에 의미로 선언했듯, 아우에게도 지옥으로 끌어들인 원망을 듣던 차였는데, 한도경은 나아질 차도가 보이지 않는 아내보다도 먼저 경쟁자이자 후배인 문선모를 영영 보내버린다. 그가 선택할 길이 박성배인지 김차인일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은 몸으로 유리컵을 씹어 먹고 있었고 최후에 죽었지만 가장 먼저 죽은 자보다 더 억울하게 눈을 감았다.

김차인이 박성배를 제거하려 매달린 것은 박성배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박성배를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자신의 존립이 달려 있었다. 박성배는 조직의 미션이었고 제거하지 못하면 자신이 제거당할 운명이었다. 이를 위해 한도경을 미끼로 걸고 박성배에게 접근한다. 말을 듣지 않는 한도경을 길들이기 위해 그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섹스 장면이 담긴 영상과 더 끔찍한 영상으로 위협하고 담요를 뒤집어 씌운 채 얼굴을 부술 듯 때리며 피떡을 만든다. 박성배를 실제로 마주했을 때 그는 자신의 세계의 룰에 맞도록 작전을 세우고 박성배를 옥죌 무기를 확보한다. 합법. 박성배는 비웃는다. 박성배의 세계에서 법이란 룰은 통하지 않았으니까. 박성배는 총칼로 무장한 무리를 앞세우며 의기양양하게 김차인 검사 일당을 도륙한다. 법을 초월한 물리적 폭력의 공포에 시달린 후에야 김차인은 박성배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달랐음을 실감한다. 그는 박성배의 세계에 입문하기로 맹세하고 거래를 한다. 동료를 죽이라는 명령을 기꺼이 수행하려 짐승처럼 움직인다. 제어할 사람이 없었다. 이미 김차인을 목숨처럼 따르던 도창학 역시 박성배의 개들에게 뼈와 살이 분리된 후였다. 김차인은 박성배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는 애초 박성배에게 개줄이 아닌 도살될 대상이었다.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박성배, 한도경, 김차인, 문선모, 도창학은 원하지 않는 한 배를 탄다. 그 안에서 서로의 살점을 해체하며 서로의 장기를 뜯어먹는다. 피가 바닥을 뒤덮을 즈음 아무도 일어나지 못한다. 아수라장 이후 비로소 지옥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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