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을 홀로 외치는 습관

중2병 같지는 않을까

by 백승권

끝내 실패하더라도 이 일이 하는 동안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걸 지금 단정한다고 무슨 소용 있겠냐만 결론이 정해진 길을 가고 있을까. 연봉과 지위가 화려하게 흔들리고 있는 깃발을 잡고 싶은 욕망은 감춰야 하는 걸까. 그걸 잡을 순 있을까. 고민이 필요할까. 그래서 괜찮을까.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아니라면 아니라도 괜찮다는 것을 나 혼자 정해도 되는 걸까. 바람이 멎으면 해가 뜰까. 해가 뜬다고 따스할까. 따스하면 옷을 말릴 수 있을까. 옷을 말리면 그다음엔? 고민이 해결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이걸 안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경험은 언제였을까. 궁금한 게 많다고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필요한 진리일까. 나를 제외한 다른 모두의 시선이 모두 비껴나가고 있고 관통한들 어떤 대미지도 없다는 것에 초연하긴 한 걸까. 그게 중요하긴 할까. 중요하지 않다면 영영 무시할 수 있을까. 혼자에게 말을 걸면 다른 자아가 현답을 줄까. 주변인은 얼마나 필요할까. 그 수만큼 만족감은 비례할까. 책임감은 반비례하지 않을 텐데. 글이 별이 될 수 있을까. 노년에 홀로 낄낄 댈 일기장을 평생에 걸쳐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음악을 듣는다고 위안이 될까. 영화는 몇 천편을 더 볼 수 있을까. 계속 보다가 어느 순간 칭찬받으려는 것은 아닐까. 인정 욕구에 얼마나 허기져 있어야 할까.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걸까. 없었던 걸까. 사랑은 고갈될까. 관계는 멈출까. 선은 지워지지 않을 텐데. 이러다 죽게 되면 그건 너무 쉬울까. 중2병 같지는 않을까. 독야청청에 중독된 건 아닐까.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을 홀로 외치는 습관에 언제부터 많은 것을 걸었을까. 잃어버려도 되는 것들을 파악하고 있기는 할까. 글을 덜어낸다고 마음도 비워질까. 물리적으로 측정이 되는 걸까. 제대로 비워지지 않아서 자꾸만 폐를 압박하는 것은 아닐까. 유효기간은 언제까지 일까. 내가 정할 수 없는 것들을 언제까지 인내해야 할까. 시간이 끝난다고 생각이 끝나진 않을 텐데 감당할 수 있을까. 새로운 것들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언제까지 반복 반복 반복해야 할까. 반복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나아질까. 진짜 원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을까. 팔짱을 낀 채 공기의 변화만 너무도 오만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안의 나를 지나치게 크게 키워버린 건 아닐까. 눈이 가려 제대로 앞뒤 분간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대방을 다 알지 못하면서 그래도 이 정도면 기본은 파악하고 있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언제쯤이면 그만둘 수 있을까. 소통을 알기나 할까. 나 중심의 우주가 흔적도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걸까. 진짜 모르는 걸까. 아니면 누가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걸까. 철이 들 수나 있을까. 든다고 달라질까. 허무는 유익할까. 책은 몇 장이나 필요할까. 천재적인 감독은 언제까지 나올까. 부러움은 유익할까. 부러워 한들 비슷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나 하고 있을까. 지적인 유흥에 빠지는 모습에 스스로 도취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까지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한없는 가벼움에 대한 추구가 이제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다른 노선을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어려운 관계와 쉬운 이별, 어느 것이 더 비중 있을까. 고민의 핵심이 뭘까. 단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늘 그랬다. 나 자신이 되는 것에 몰입한다는 것만으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 졸음에 취하지 않는 낮이 온들 그때 의미 있는 기여를 나와 모두에게 베풀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가끔 귀를 자르고 싶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아서. 눈을 파낼 수는 없다. 여기까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없더라도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모든 선택의 대가는 되돌아오고 어떤 파장은 모든 것을 부숴놓는다. 재배열은 낯설지만 흥미진진하고 예측할 수 없어서 미묘한 쾌감을 전한다. 하지만 그렇게 과거는 지워진다.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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