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놓아버린 것들

글이 된 삶들 중 처연한 것들이 멈추게 했다.

by 백승권

떠난 기억도 없는데 돌아갈 곳을 뒤적거릴 때가 있다. 언제 지나쳤을까, 그때 뭔가 좋은 걸 경험했던 걸까. 아득하고 아련한데 구체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뭔가 더 간절해지곤 한다. 구겨진 채로 오래되어 놓여있는 바스락거리는 종이에 불이 붙어 서서히 퍼지듯 온기가 번져간다. 상실과 결여의 감은 없다. 그걸 논할 만큼 불행의 증거가 내겐 없다. 도로시가 우리 곁에 오고 나서 나라는 개인의 개인이 희미해졌는가, 그것도 아니다. 되려 더 분명해졌다. 누구의 누구로서 내가 할 일들. 그런 것들에 대해 떠올리곤 한다. 그걸로 나의 정의를 채워가곤 한다. 어차피 스스로 채울 수 없는 시간이었다.


'억척스러운 인천여자'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지큐에 실렸다. 시인의 친구이야기, 엄마와 이야기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부분에 곗돈 떼먹은 사람을 수소문해 찾아갔더니 병실에 누워있어서 밤낮으로 밥을 날라 줬다는 내용이 있었다. 삶은 글로 옮겨지기엔 너무 복잡하다. 글은 시도를 할 뿐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 중 일부가 세상에 노출되고 몇에게 읽혀지고 다시 전해진다. 말은 글이 되고 다시 말이 된다. 그 과정에 사건이 끼어들고 도구가 바뀌기도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까지의 방향은 동일하다. 인천여자이야기가 어째서 내게로까지왔는지 모든 경로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연히 읽었다기엔 비우연적인 일들이 이미 첩첩이었다. 과거의 정서가 피어올랐다. 지큐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글들이 있어서였다. 잠시 멈추게 하는 것들. 멈추다가 글을 썼다. 지금처럼.


글이 된 삶들 중 처연한 것들이 멈추게 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같이 기구한 것들. 연민과 동정을 보낼 정도로 내 삶 역시 그리 고상하지 않았다. 미세하게 떨리게 했다. 난 어땠나. 뒤돌아 볼 정도로 길게 살아오지 않았다. 저런 삶은 글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대체로 균일하고 고요해보이는 주변이 얼마나 비루하고 복잡 다단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몇꺼풀 벗겨 보게 했다. 다시, 내 삶은 어떤가. 나를 기록하기 위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점점 줄어 간다. 그런게 있기나 했을까. 의견과 변호로 장벽을 친 후 안에서 쭈구려 앉아 나를 기록한 결과물에는 아까 글에서의 비릿함이나 삶의 구체성이 부족하다. 주체로서 기록하는 일은 유사 위인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 나의 궤적이 아닌 그렇게 보이고 싶어하는 나를 내가 선망하는 나에 대한 이미지를 기록할 뿐이다. 그건 실패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에서 맴돌다 주저 앉는다.


돌아가고 싶은 정서에 대해, 다시 꾸깃꾸깃한 종이에 적고 싶은, 이런 생각의 정체에 대해 해소방식에 대해 좀 더 골몰해본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놓아버린 것들은 돌아오지 않고, 지금 범람하는 행복의 수심 또한 감당하지 못하면서 바람만 가득한 숨소리로 의미 없는 말과 글을 늘어놓는다. 부유하는 그리움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질감을 살피고 싶었으며 근원에 대해 묻고 싶었다. 내게서 시작되지 않은 것들이 내게서 매듭이 지어질 수 있는지, 내게 닿았다고 이런 식으로 옮겨도 되는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의 소용을 묻는 게 과연, 아니 꼭 그래야 하는지. 쓰고 싶기만 했다. 사실 그저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도착할 곳을 모른 채 말도 아니고 글도 아닌 걸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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