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온 더 트레인, 돌아갈 수 없는 날들

테이트 테일러 감독. 걸 온 더 트레인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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퀭한 눈, 어둡고 불안한 표정, 움츠린 어깨와 등, 부스스해 보이는 옷차림. 레이첼(에밀리 블런트)은 알코올 중독자였다. 행색으로 단정지은 게 아닌 그녀가 늘 물고 있는 플라스틱 물병에 가득 채우는 술이 전부를 말해주고 있었다. 한시라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모든 요소들이 술을 열망하고 있었다. 행인들은 피했고 응시하는 이들은 연민을 보내기도 했다. 레이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 집에 수년 동안 신세 지고 있었고 헌신적인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헌신은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레이첼은 출퇴근 기차의 늘 같은 창가 좌석에 앉아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먼 곳에 즐비한 아름다운 집들 가운데 그녀의 과거가 살고 있었다.


결혼. 레이첼과 남편 톰(저스틴 서룩스)은 아이를 원했다. 오랜 노력과 시도에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 유경험자조차도 쉽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감히 위로할 수 없는 막막함과 절망감. 레이첼이 술과 가까워진 건 그 시기였다. 음주는 기억의 일부를 지웠고 톰을 통해서만 듣는 지워진 기억 속의 자신은 최악이었다. 통제를 잃고 주변과의 관계를 부수며 남편의 직장마저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레이첼의 기억은 톰의 증언에 의해 구성된 짐작의 기억이었다. 부부는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톰은 바람을 피웠고 이후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갖는다. 레이첼은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레이첼은 자신이 낳지 않은 톰의 아이를 안아본 적이 있었다. 문이 열려 있었고 아이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 느닷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 남의 아이를 안는 풍경이라니. 이후 레이첼은 접근마저 거부당한다. 누가 봐도 괴상망측했고 위험했다. 그저 그렇게도 열망했던 아이라는 존재를 안아보고 싶은 까닭이었지만, 경찰은 수갑을 채울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 출퇴근 기차 안에서 그 집과 그 집의 사람들과 주변을 응시하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자신의 모습이 그들에 의해 실현되고 있었다. 흩어지는 풍경 속에서 레이첼은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을 켠 듯 꿈을 꾸고 있었다. 풍경이 지나가면 다시 현실이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으로 일찌감치 해고되고 나서도 그 풍경을 보기 위해 계속 출퇴근 기차에 올랐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가 매일 바라보던 그 풍경의 집들 인근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근처에서 레이첼은 폭행을 당한 채 정신을 잃었고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었다. 죽은 이는 한때 톰 부부의 아이를 돌보던 여자 메간(헤일리 베넷). 영화는 관점을 바꾸며 비극의 위치를 옮긴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는 레이첼이 아니었다. 불행은 자신의 지난 사연을 침묵하는 타인의 일상 속에 뿌리 깊게 자생하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메간의 과거가 그러했다. 그녀는 어린 날 아이를 잃고 트라우마 속에서 내내 괴로워하고 있었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오래 상담해온 정신과 의사(에드가 라미레즈)에게 많은 비밀과 거짓말을 고백한다. 회상과 분석 속에서 눈빛과 몸짓이 교차한다. 이후 메간은 숲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레이첼은 사건에 개입한다. 메간의 남편에게 다가가 자신이 봐온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자신의 전남편 톰을 의심하고 자신을 향한 경찰과 주변의 의심에게서 저항한다. 누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그녀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확신할 수 없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고 짜증과 화를 제어하는 데 늘 실패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맑은 정신과 건강한 외모를 지닌 성인 여자로 바꿀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누적된 취기만큼 신뢰도 잃어버린 후였다.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이라 믿는 것을 끊임없이 주장할 뿐.


영화는 세 여자와 한 남자를 교차하며 관계 안에서 드러나지 않던 각자의 사연들을 조명한다. 누군가 깊게 눌러쓴 위선의 가면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는 동안, 술에 취한 여자는 내내 비난과 자괴 속에서 스스로를 용서할 방법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타인의 증언으로 구성된 기억과 자신이 소환해낸 기억이 일치하지 않을 때의 괴로움이 극 전체의 분위기를 장악한다. 모든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고 악인이 처단된 후에도 과거는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시 전 남편과 아이를 가질 수도 다시 신혼집으로 돌아갈 수도 다시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으로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녀의 수습은 더 악화되는 현실에 제동을 가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현재를 더 큰 불행의 진행으로부터 이탈시키는 것. 그것뿐이었다.


개인의 수만큼 지옥의 수도 같을 것이다. 알고 싶지 않고 닿지 않을 뿐, 개인의 지옥은 깊고 은밀하게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을 숙주로 삼는다. 여러 번 죽이고 주변으로까지 어둠을 전염시킨다. 모든 유혹은 그래서 복합적이다. 지옥이 교차하면서 또 다른 지옥이 생성되고 더 많은 종류와 개수의 죽음이 안을 채운다. 레이첼이 도망친 곳은 기차 안이었고 취한 채 바라본 창밖의 과거에선 레이첼이 제어할 수 없는 또 다른 지옥들이 번성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옮기지 않으려 레이첼은 정신을 차려야 했고 거기서 더 이상의 자신을 죽이는 행위가 멈출 수 있었다. 영화는 레이첼의 장밋빛 미래를 단언하지 않는다. 앞으로 기차는 늘 같은 노선으로 움직이고 승객들은 서로의 취기에 섞이며 현실보다 다양한 지옥도을 반복 체험하게 될 것이다.



천국 같은 영화들에 대한 지옥 같은 기록물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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