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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y 31. 2017

밤에 해변에서 혼자, 사랑에 대한 난해한 주장

홍상수 감독. 밤에 해변에서 혼자





영희(김민희)는 여배우다. 유부남 감독과 연애 관계였다. 소문이 파다했다. 영희와 마주치는 모든 한국인이 그 이야길 거론했다. 영희는 한때 외국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만나러 와도 괜찮았다. 애타게 기다리지 않았지만 기다리지 않은 것도 아니다. 외국의 많은 것들은 부러움 투성이었다. 그곳의 사람들도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그리고 돌아온 한국에서 다시 사람들이 그녀에게 묻기 시작했다. 감독과의 관계와 현재에 대해서. 


영희는 반응한다. 웃어넘기거나 답을 하기도 한다.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담배를 피운다. 극장에서 마주친 지인(권해효)과 자리를 이동하고 저녁에 술자리를 가진다. 여러 명이 모인다. 전에 자신을 좋아했던 남자(정재영)가 있고 그의 현재 여자 애인(박예주)이 있다. 자신을 챙겨주는 선배 언니(송선미)가 있다. 발언권이 영희에게 넘어온다. 영희는 외국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외국의 남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곱게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냐고 윽박지른다. 술자리는 침잠해진다. 영희는 배시시 웃는다. 술자리는 온기를 되찾는다. 


영희는 해변에 눕는다.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언제는 정체 모를 남자가 이런 영희를 어깨에 둘러업고 어디론가 가기도 했다. 누군가 영희를 깨운다. 감독의 스텝(안재홍)이다. 소문으로 돌고 돌던 영희와 만나던 그 감독. 그날 감독(문성근)과 술자리가 벌어진다. 감독은 홍상수를 연상하게 한다. 영희는 김민희다. 감독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후회로 가득한 표정과 찌든 말들을 내뱉는다. 영희는 감독의 잔에 가만히 술을 따른다. 감독은 영희에게 책을 건넨다. 펼쳐서 맘에 드는 구절을 읽어준다.  


영화는 현실의 소문을 의식한다. 감독의 작품은 자기복제이고 사생활은 비난의 대상이라는 점을 애써 가리지 않는다. 영희는 만나는 이들의 말을 되돌려준다. 말과 말의 시간들은 대부분 반복으로 채워진다. 밤에 해변에서 혼자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소문에 대한 영화이고 관계에 대한 영화이자 관계를 정의하는 사랑이라는 관념에 대한 영화다. 자신의 현재에 얽힌 사랑과 관계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영희의 말들은 부유하는 흐름 속에서 유일하게 고여 있는 순간이었다. 꽃을 고이 쓰다듬거나 돌다리를 건너기 전 납작하게 절을 하는 영희의 모든 행동엔 기이하지만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여과되지 못한 감정의 잔여물들이 남아 있었고 감독도 영희도 힘들어했다. 모래를 털고 일어난 영희는 꿈을 꿨다고 이야기한다. 영화 자체가 이미 감독의 꿈처럼 보인 후였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감독의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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