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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n 07. 2017

사랑의 시대, 공동체의 환상과 비극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 사랑의 시대




자신의 정체를 착각할 때가 있다. 한없이 조심하는 것은 가능성의 여지를 좁히되 만약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라도 있지만 한없이 낙관적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생을 허물어 뜨리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은 늘 중요하다. 만인의 귀를 자극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까지 독으로 퍼지는 것은 후자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무너짐을 겪기 전까지 개인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알지 못한다. 난 관대하고 난 지성인이며 난 언제나 이성을 컨트롤할 수 있고 난 늘 그래 왔듯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고 가장 최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럴수록 더 파괴적으로 망가진다. 남편과의 섹스 후 땀에 젖은 벌거벗은 몸으로 남편의 외도를 남편에게 직접 들었던 안나(트린 디어홈)의 상황이었다.  


수많은 방, 넓은 공간, 그만큼 텅 빈 곳곳들. 물려받은 큰 집을 팔아넘기려던 남편을 만류할 때만 해도 자신에게 이런 비극이 닥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같은 남자와 지낸 15년의 무료함을 이젠 벗어날 때도 되었다. 친분과 거리를 떠나 곳곳의 사람들을 모았고 그렇게 3인의 가족은 10인의 타인들이 뒤섞여 북적이는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건축가이자 교수인 남편, 유명 앵커인 부인, 십 대 딸, 다양한 캐릭터의 동거인들. 늘 하나의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며 공동의 주제를 의논했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다. 안나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듯했다. 거리를 나서면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 다정하고 지적인 남편, 사랑스러운 딸,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친구들로 둘러싸인 삶. 아마 공동체 제안을 자기 생애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자찬했을지도 모른다. 다수결에 의해 이방인을 집의 구성원으로 들이는 입주 방식. 그 자리에 남편의 어리고 예쁜 애인이 초대받기 전까진.  


비극은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심리적 불안정을 숨길 수 없었던 안나는 사고 끝에 방송국에서 조차 방출된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 성취의 모든 탑이 무너지고 있었다.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주름은 아무리 당당한 태도를 취하려 해도 자꾸만 위축되게 만들었다. 남편 에릭(율리히 톰센)은 분가를 고려할 만큼 새 애인 엠마(헬렌 레인가르드 뉴먼)에게 빠져 있었고, 엠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나는 생의 모든 의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주변의 것들에 많은 무게 중심을 둔 삶이기도 했다. 딸조차 공동체의 삶에서 그녀가 나가주길 선언한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안나가 추진한 공동체가 생명력을 소진한 그녀에게 공동으로부터 탈퇴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식탁을 둘러싼 모두의 표정은 침울했다. 하지만 모두를 합해도 안나만큼은 아니었다. 안나의 사지가 떨리고 있었다.


집의 실소유자이자 이 모든 갈등의 시작이었던 에릭에 대한 비난은 크지 않았다. 개인의 선택이었고 감당 또한 개인의 몫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 파장은 공동체 전체의 존립을 뒤흔들고 있었다. 공동체의 애초 취지가 뭐였든 식사 때마다 남편과 남편의 새로운 애인, 또는 아빠의 새로운 애인, 그리고 전 부인, 또는 버림받은 엄마가 같이 쿨하게 오늘 있었던 크고 작은 일에 대해 담소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그림은 좀처럼 그려질 수 없었다. 인생을 강탈당한 여자는 떨리는 어깨로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전후 사정을 공유한 구성원들은 마냥 웃으며 음식을 나눌 수만은 없었다. 엠마의 합류를 제안한 건 안나였지만, 결국 어떤 진실도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에릭 또한 분열한다. 에릭이야말로 이런 야만을 저지르고도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자였다. 사랑하는 가족, 사회적 지위, 집주인으로서의 특혜까지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사랑을 영영 선택했고 전 부인의 육체와 영혼이 무너지는 동안 어떤 기득권에서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비겁했다. 15년을 배신한 남편이자, 엄마를 절망에 빠뜨린 아빠로서 에릭은 지독한 이기주의자였다.


공동체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분위기가 이런 상황에서 공동생활의 유지는 불가능해 보였다. 다들 쉬쉬하는 상황에서 딸 프레아(마샤 소피 발스트룀 한센)는 어렵게 입을 열어 안나의 방출을 선언한다. 누구도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오직 프레아만이 그 결정의 발언자로서 유일한 자격이 있었고 이를 기꺼이 소비했다. 매달 막대한 비용과 공간이 요구되는 생활이었다. 그만한 쾌락과 매력 또한 넘쳐 났다. 개인으로서의 서로를 존중했고 어려울 때 돌보았지만, 자신의 자리가 위기에 놓였을 때 선뜻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집의 소유주와 경제권 등 보이지 않는 계급과 서열이 깔려 있었고 늘 슬피 우는 자는 가장 가난한 자였다. 공동체의 이상은 허구였다. 긴 사랑은 파국으로 끝났다. 건배는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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