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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Dec 15. 2017

트레인스포팅, 약쟁이, 쓰레기, 살인자

대니 보일 감독. 트레인스포팅 2




친구에게 마약을 줬고, 친구는 마약 중독으로 죽었다. 원나잇으로 아기가 태어났고, 아기는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죽었다. 술 마시다 아래층으로 술병을 던졌고, 술병에 맞은 여자는 머리가 깨져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어울리던 놈들이 있었고 그들과 한탕을 저질러 돈을 챙겼으며 잠든 사이 돈을 들고 사라졌다. 약쟁이, 살인자, 쓰레기. 그들은 돈을 들고 튄 새끼를 미친 듯이 찾았고 20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대니 보일 감독은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나이 든 양아치들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 다독이지 않는다. 약쟁이, 살인자, 쓰레기는 20년이 지난 들 여전히 약쟁이, 살인자,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고 해부한다. 용서와 기회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사회가 그들을 내버렸다고 옹호하지 않는다. 렌튼(이완 맥그리거), 스퍼드(이완 브렘너), 식보이(조니 리 밀러), 벡비(로버트 칼라일)는 변하지 않았다. 영화는 온몸을 바늘구멍으로 만드는 마약처럼, 웃으면서 저지를 수 있는 범죄처럼, 칼로 긋고 목을 조르는 무감각한 폭력처럼 개인의 의지에 아랑곳없이 변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구성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개새끼들은 결국 습성을 버리지 않았다고.


나이를 먹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과거를 되돌아본다. 예정했던 것처럼, 그때 그 돈이 내 것이었다면 내 인생은 꽃밭이었을 텐데, 아마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와 결혼해 토끼 같은 자식들을 낳고 선행을 베풀고 고귀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만인의 칭송을 만끽하며 살았을 텐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한다. 과거의 엇나간 화살이 자신의 현재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고, 과거의 혐의로 현재의 폐허를 덧씌운다. 불운이 나를 키웠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반복한다. 다시 마약을 꽂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살인을 계획한다.


이런 자들에게 기회는 독이다. 좋은 기회는 나쁜 기회가 된다. 사회적 자금을 끌어올 기회는 친구를 다시 배신할 기회가 된다. 여자 친구라고 여기는 여자(안젤라 네드코야바)를 변태 성행위 몰래카메라 용으로 '활용'하고, 호텔경영을 꿈꾸는 자식에게 부잣집 터는 법을 가르치며, 부인과 자식을 그리워하면서도 다시 모든 희망을 접은 채 약을 빤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를 망가뜨린 자를 죽이려 한다. 이런 쾌감을 느껴서라도 보상받아야겠다며.


제약을 느끼지 못했던 시절은 마냥 좋았다. 자유로웠고 환각에 젖은 즐거움 투성이었다. 아무도 나와 우리의 질주를 막지 못할 것 같았다. 20년은 길었다. 별일이 다 있었고 한 친구(켈리 맥도날드)가 고층 빌딩에서 정돈된 스타일을 갖춘 변호사가 되는 동안 자신은 이제 돌아와 20년 전의 과거를 회복하려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었다. 향수에 취하는 짓은 어설프다. 남는 건 서로를 향한 비난과 욕설, 한 푼이라도 더 들고 튀려는 추악한 욕망뿐이다.


그게 뭐가 나쁜가. 나쁘다. 최악이다. 개인도 사회도 무리도 어느 하나 구원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망가뜨린 후 한참을 즐기고 나니 최악의 수준이 기본, 원점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다시 원전, 다시 최악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벗어나지 못한다. 배신당하지 않을 기회가 올까. 기회는 무수히 쏟아진다. 돈을 다시 훔치기도 하지만, 간혹 모두가 비웃는 자전적 이야기를 쓴 후 작가를 꿈꾸게 되기도 한다. 약쟁이가 작가라니. 그걸 누가 읽겠어? 모두가 코웃음을 친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정상적인 영역을 향해 한줄한줄 끄적이던 스퍼드는 유일하게 틈새의 빛조차 보이지 않던 똥통을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그 기회를 향한 도움을 뿌리치지 않는다. 20년 넘는 동안 뛰어내리지 못한 선로 밖으로 벗어날 마지막 페이지를 작성한다. 마흔여섯 살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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