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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Dec 15. 2017

델마, 발작

요아킴 트리에 감독. 델마







델마(에일리 하보)의 증상은 근원이 없다.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을 잃는다. 주변에 타인이 없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징후는 내면이 아닌 외부로부터 온다. 천장이 흔들리고 새 떼가 날아오고 이윽고 손이 떨릴 때면 이미 늦는다. 치료법은 없다. 부모님이 신이게 의지하게 된 후 나아졌다지만 진정되었을 뿐 극도의 불안감은 늘 집안 곳곳과 그들의 표정 속에 스며 있다. 처음엔 의심했다. 하지만 판단을 보류해야 했다. 델마의 어린 날, 갓난 동생이 있었다.


델마는 겨우 네다섯 살이었고 동생에 대한 감정은 단순했다. 엄마가 몸도 못 가누는 동생을 돌보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했다. 어린 델마에게 동생은 엄마(엘렌 도리트 페테르센)와 자신 사이의 방해물이었으리라. 방해물. 델마의 초자연적 능력은 그때부터 위험했다. 3초 전만 해도 침대에 있던 동생이 사라진다. 어른의 힘조차 작용하기 힘든 장소에 아기가 처박혀 있었다. 부모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델마는 무엇을 느끼고 상상하고 무의식적으로 원한 걸까. 델마는 이런 상황을 즐길 정도로 영악하지 않았다. 델마가 잠든 사이 (아마도 꿈에 잠겨 있었던 사이) 엄마와 목욕 중이던 동생은 사라진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장소에 동생의 몸은 옮겨져 있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둘째 딸을 보며 아비는 언 호수를 내리쳤고 어미는 맨발로 눈밭을 지나 다리 밑으로 몸을 던졌다. 엄마는 불구가 되었고 의사인 아비(헨릭 라파엘센)는 델마에게 강한 약물 치료를 시작한다.


스무 살이 지난 델마는 자기 증세를 근원을 뒤진다. 책과 자료 사진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증세를 보였던 할머니. 병명은 짐작하지만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쓰러져 몸을 떠는 여성과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들도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사랑에 빠진다. 먼저 다가와 입을 맞춘 사람, 그 사람 곁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면 주변의 공간이 흔들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칠까 봐 델마는 거리를 두고 싶지만 델마의 능력도 사랑이라는 감정도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델마는 키만 컸지 여전히 부모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었고 자신의 과거를 안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델마는 외로웠다.


자신의 과거와 내면의 위험을 고려한 걱정이 아닌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고 겉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간절히 원했다, 끔찍한 보호가 아닌 강렬한 사랑을 염원했고 부모는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델마에게서 다시 한번 공포를 직감한 부모들은 결단을 내린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었다. 그들은 델마를 없애는 것을 종교적 사명처럼 합리화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마가 아니었고 또 다른 살인을 막기 위해 딸의 목숨을 앗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 가여운 이들이기도 했다. 아기가 영영 사라졌던 호수에서 델마의 죽음은 계획되어 있었고 델마의 내면이 델마보다 먼저 위기를 직감한다. 델마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가혹한 보호자? 딸을 잃은 불쌍한 남자? 델마의 보호본능이 델마가 모르는 사이 가해 예정자의 몸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델마의 흔적이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홀로 있던 델마의 아비는 불타고 있었다. 발화점이 없어서 꺼질 수도 없었다. 완전히 불타 사라진 후에야 델마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 원하던 일이었고 일어난 일이었다. 델마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불구가 된 엄마를 다시 일으키고 등을 돌린다. 영영 집을 떠난다. 비로소 자신의 감정에 자신의 선택에 집중하고 선택한다. 진정 자신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걸 배운다.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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