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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Dec 10. 2017

마더! 연예인병 걸린 신에 대하여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 마더!






소유에 대한 주장이 계속 무시된다면 애써 가꾼 경계는 모든 힘을 잃는다. 애초 (인간이란) 피조물에게 자신만의 것, 자신만의 영역이란 무시당하기 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성인 남자의 가죽을 뒤집어쓴 '그'에게, 신의 권능을 지닌 그에게, 창조적 활동으로 만인의 추종을 받는 그(하비에르 바르뎀)에게, 자신에게 흠뻑 매료된 여자 인간은 얼마나 '쉬운' 존재일까. 애초 그녀(제니퍼 로렌스)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내(HIM)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몽땅 전소된 남자의 집을 하루 종일 보수하기 바쁜 여자는 묘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들이닥치는 불청객들, 팬을 자처하는 그들을 시인 남자는 반갑게 맞이한다. 여자는 불쾌하다. 그들은 단지 잠시 머무는 손님이 아니었다. 집의 구석구석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하나하나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을 점점 들이닥치는 그들이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호소한다. 그들이 이제 제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달랠 뿐 자신을 좋아해 주는 손님들을 내보낼 생각이 없다. 손님들은 점점 집을 가득 채운다. 집은 점점 부서져 간다. 임신한 여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짜증과 분노가 광기로 치닫고 있었다. 먼저 미쳐 있던 건 손님들, 남자의 추종자들이었다.

남자가 발표한 시가 명성을 얻자 온 지구 사람들이 다 몰려와 문을 부수며 난입한다. 남자를 안고 키스하고 기념으로 집안의 물건을 가져가고 벽을 발로 차고 유리를 깨고 서로 싸우고 소리 지르고 총을 쏘고 폭파시키고 세력이 나뉘고... 집은 전쟁터가 되고 지옥 같은 참사가 벌어지고 시체가 쏟아지고 비명과 눈물이 뒤덮는다. 여자는 혼돈 속에서 남자를 부르짖지만 닿지 않았고 뱃속의 아기는 바깥으로 나오려 한다. 마침내 엄마를 죽일 듯한 고통에 몰아넣으며 태어난 아기, 여자는 지키려 했지만 아기는 호시탐탐 노리던 그에 의해 사람들에게 제물처럼 들어 올려진다.

조각난 살점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지만 주변 사람들의 입가는 피로 물들어 있다.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아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절멸. 여자는 이제 어떤 생명체도 존중하지 않는다. 찢어 죽이고 불태워 죽인다. 공간과 인간의 모든 흔적을 말살하기로 한다. 남자와 여자의 공간은 무명의 불청객들로 가득해졌고, 여자가 깊은 곳으로부터 박동을 느꼈던 내벽은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다. 남자의 무관심과 남자를 추총하는 군중의 광기 속에서 아이를 잃은 어미의 분노가 폭발한다. 모두의 파괴보다 더 큰 파괴를 일으키고 어떤 소음보다 더 큰 비명으로 남은 공기를 압살 한다. 집은 불길에 휩싸이고 그는 폐허 속에서 여자의 흉부를 직접 갈라 심장을 꺼낸다.

마더! 에서 가장 의아했던 건 내내 인기관리에 여념이 없어 아내고 자식이고 몽땅 육체와 정신이 찢겨 죽어가는 동안 실실 웃기만 하던 남자 '그'였다. 애초 누구를 사랑하는 게 아닌 사랑받는 것에 온통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단 하나의 팬이라도 자기를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천사의 미소와 친절을 베풀었다. 모든 것이 불타고 무너지고 멸망하는 동안 그는 광포한 팬덤 속에서 슈퍼스타로서의 쾌락과 희열을 누리고 또 더 바라고 있었다. 사탄은 위장한 채 극적으로 등장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을 탐하고 망치며 계획한 주체는 다름 아닌 '그',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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