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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ug 15. 2017

혹성탈출: 종의 전쟁, 실패한 리더, 시저에 대하여

맷 리브스 감독. 혹성탈출: 종의 전쟁




리더는 총알받이다. 리더가 뚫리면 그 뒤의 풍경은 피바다가 된다. 시저(앤디 서키스)는 알고 있었다. 그 무게감에 익숙했고 늘 힘에 겨워했다. 하지만 감당했다. 도망침 없이 요구되는 자리에 서서 무리를 이끌고 나갔다.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유인원은 시저에게 모조리 의지했고 시저에겐 한계를 보일 틈 따위는 없었다. 더욱 강해지기를 요구받았고 충실히 임했다. 가족은, 변수였다. 시저마저 자신이 이토록 판단력을 상실할지 몰랐을 것이다. 뇌를 지닌 생명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의 비인간적인 면에 더 당황했을 것이다. 가족을 무참히 잃은 시저는 변한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밑바닥의 어둠을 끌어올린다. 살인을 살인으로 앙갚음하기 위해 모든 것에 눈을 감는다. 그때부터 시저는 더 이상 리더가 아니었다.


복수는 어떤 결과로 치닫든 평가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복수는 시도 자체가 실패다. 이미 상실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이었다. 표현은 어떤 것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한다. 시저는 그걸 판단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내와 자식을 상실한 상황에서 시저는 이미 자신의 과거와 미래, 현재가 붕괴되고 있었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은 채울 수 없었다. 남은 생 내내 고통과 슬픔으로 보내야 했다. 시저는 복수의 대상을 향해 총력을 기울인다. 심지어 무리를 이탈한다. 모두의 만류에도 그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리더의 감투를 벗어던지고 처단자로 모든 룰에 도전한다. 종족의 운명이 걸린 전시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분노로 휘감겨 있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살인자를 살인해야 했다. 남은 생 해야 할 일은 그뿐이었다.


유인원이 인간 종족의 전쟁포로가 되어 폭압에 울부짖었을 때, 그 풍경에 온통 둘러싸인 후에야 시저는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망연자실한 눈빛, 그제야 자신이 무엇에 몰두했고 무엇을 완전히 배제했는지 깨닫는다. 머리에 겨눠진 총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시저는 더 많은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유인원 무리가 없는 시저는 어떤 왕관을 쓰더라도 소용없었다. 존재는 집단 안에서 가치를 보존했고, 집단이 사라진다면 리더도, 시저도, 허상에 불과했다. 산채로 맞는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시저는 자신의 생을 유린당하고 그 주변이 폐허로 변한 후에야 자신이 다시 돌아올 곳을 더듬는다. 꺼져가는 생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다. 전쟁의 구도는 복잡했다. 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모든 유인원이 아군이 아니었고 모든 인간이 주적은 아니었다. 인간도 죽어가고 있었다. 인간에 의해, 인간이 잉태한 바이러스에 의해.


거대한 폭음과 무차별적 파괴로 집단의 목적이 끝으로 치달을 즈음, 시저는 자신의 생명력을 파괴한 살인자의 보금자리로 향한다. 살인자 역시 리더였고 상실을 겪은 자였으며 책임의 무게를 아는 자였다. 방식에 있어 거대한 격이 있었을 뿐. 가족의 잃은 개인의 모든 분노를 쏟아부어 죽이려고 덮쳤을 때 시저가 마주한 건 피와 폭력이 아니었다. 살인자가 그토록 깔보던 (자신들과 같은) 유인원 같은, 아니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절망과 초라함으로 가득 찬, 말과 기력을 잃은 최약자의 떨리는 몸과 동공이었다. 복수를 실행하기도 전에 콜로넬(우디 해럴슨)은 이미 죽음에 이르고 있었다. 시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죽게 될 자에게 더 빠른 죽음을 선사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보상도 될 수 없었다. 시저는 복수의 허망함 앞에 치를 떤다. 대상은 총성과 함께 사라졌고 시저는 어떤 위안도 받을 수 없었다.


전쟁의 승리는 생존의 연장을 의미했다. 유인원은 긴 고통과 많은 희생을 거친 후에 행성 안에 거할 수 있는 자유를 겨우 획득했다. 완전한 자력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평화는 스르르 무리에게 이불처럼 덮였다. 겨우 거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피를 닦고 내일과 그다음 날에 대해 안도할 수 있었다. 시저는 가장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과 가장 가까운 동료들의 배신과 가장 증오했던 이들의 자멸을 겪은 후에야 복원될 동력을 얻은 미래를 관조할 수 있었다. 절실한 시도와 불안한 판단,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지나고 나서야 고요와 마주할 수 있었다. 영원한 고요. 시저의 시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시저는 풀처럼 누웠다.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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