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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25. 2017

파도가 지나간 자리, 어둠 속에서 길 잃은 사람들

데릭 시앤프렌스 감독.  파도가 지나간 자리






갓난아기가 파도에 떠내려 왔다. 유산을 두 번 겪은 부부가 살고 있는 등대와 풍경이 아름다운 섬이었다. 아기 곁의 남자는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떠내려온 아기는 신의 선물로 보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선물을 주기 위해 신이 그동안 가혹한 시련을 내린 건 아니었을까. 품 속의 아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남편 톰(마이클 패스벤더)에게 아기는 죄의 시작이었다.  죽은 자에 대한 소식을 육지에 알려야 했고 아기를 보호자의 품으로 돌려줘야 했다. 하지만 아내 이자벨은 신의 선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목숨 같은 아이를 두 번이나 잃고서 나타난 생명이었다. 절벽 위에 세운 십자가의 온기가 채 식지 않은 상태에서 파도를 타고 떠내려온 아기는 기적이자 운명이었다. 사랑하는 사랑하는 남편의 만류에도 이자벨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시체를 몰래 파묻고 아기를 저희의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행복했다. 천국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모든 바람과 햇볕이 셋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루시는 눈부시도록 예쁘게 자라나고 있었다. 톰의 죄책감은 가시지 않았지만 이자벨과 루시의 행복한 모습 또한 놓아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불안은 실현되었다. 루시의 친엄마 한나(레이첼 와이즈)가 눈물에 젖은 얼굴로 톰 앞에 나타났다. 


루시는 어느덧 네 살이었다. 수사는 다시 시작되고 톰은 모든 것이 자기의 결정이자 죄였다고 거짓 자백한다. 이자벨을 지키기 위해 그는 남은 생을 기꺼이 헌납한다. 이자벨은 울부짖으며 루시, 아니 그레이스와 찢어진다. 그레이스는 한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자벨을 찾으며 발버둥 친다. 각인된 어미의 얼굴과 이미지가 바뀔 리 만무한 일이었다. 한나는 갈등한다. 톰은 모든 것을 감당한다. 전쟁영웅으로서 폭음과 시체더미에서 살아난 그였다. 섬에 오기 전부터 그에게 삶이란 신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과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만 살아남은 운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마 은밀한 고독 속에서 죽어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암흑 속에서 등대 같은 빛이 되어준 게 이자벨이었다. 원하던 아기를 갖지 못했지만 이자벨과의 사랑은 결혼은 그리고 루시의 존재는 이미 목적 이상을 이뤄낸 삶이었다. 어떤 훼손도 용납할 수 없었다. 쓰러지고 사라져야 한다면 자신의 몫이어야 했다. 루시가 자신들의 둥지로 떠내려 왔을 때 루시를 품고 키우기로 힘든 동의를 내려야 했을 때 톰은 이미 자신의 몸에 사슬이 채워질 날을 직감했을 것이다. 톰은 기어이 파멸을 자처하며 실행에 옮긴다. 루시를 원래 있어야 하는 곳으로 이자벨의 품에서 빼앗고 자신은 죄의 대가를 치르러 감옥으로 들어간다.


한나 역시 그레이스를 자신보다 먼저 생각했고 사건의 정황을 모두 안 이후에는 그레이스의 전 부모로서 이자벨과 톰의 비극을 원하지 않았다. 모두가 균열과 상처를 최소화하려 자신의 자리에서 분투했지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이자벨과 톰에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여였고 그레이스는 이후 다시는 루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회복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비극이 될 수밖에 없는 양가적 입장에 대한 이야기. 동시에 갖거나 동시에 행복하거나 동시에 웃을 수 있는 경우가 그들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아이는 하나였고 낳은 자와 기른 자가 나뉘었으며 산자들이 남아 오래도록 신음해야 했다.


신이 톰을 살려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장의 바깥도 마찬가지라는 허망한 진실에 방치하기 위해? 달콤한 행복의 희열을 만끽한 다음, 다시 빼앗기는 과정에서 겪을 지옥을 구경하기 위해? 이자벨이 떠난 빈집에 남아 톰은 내내 물었을 것이다. 파도가 떠나간 자리에서 길을 찾는 배들을 위해 불을 밝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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