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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22. 2017

덩케르크, 희생의 품격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덩케르크






고립으로 비롯된 공포는 집단을 하나의 생명체로 몰아넣는다. 우리는 모두 죽을 거라는 두려움이 역병처럼 떠돈다. 거센 파도와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밭, 너비를 가늠하기 힘든 하늘과 사이를 메우는 적막. 전쟁의 경험이 많은 이들일수록 현 상황에 대해 낙관하지 않는다. 사방에 널브러진 전우들의 시체 사이에서는 옅은 미소조차 엄습하지 못한다. 전쟁의 모든 부분이 승리로 채워질 수 없었다. 1940년 프랑스 북부의 덩케르크에서는 40만 명의 군인이 느리게 죽어가고 있었다. 언제라도 독일 폭격기가 창공을 찢으며 나타나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것만 같았다. 환상이 아닌 실제 전시상황이었다.

포위망은 실제로도 좁아지고 있었다. 육지를 장악당했고 눈 앞은 거센 파도였으며 공중에 아군 전투기는 보이지 않았다. 산자들끼리 편을 가르고 있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죽은 자의 군복이라도 입어야 했다. 숨어든 배에 날아온 총탄에 의해 바닷물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자 언어가 다른 자(아뉴린 바나드)와 소속이 다른 자(핀 화이트헤드)를 차출해 먼저 죽이기로 했다. 선과 악의 구분은 거창했다. 생존에 대한 욕망에 이유는 없었다. 같은 편도 없었다. 죽음이 숨통까지 노크하고 있을 때 나 이외에 누구든 먼저 죽어도 괜찮았다. 덩케르크의 바닷물에 잠긴 인간들이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뢰를 맞은 배 안에 있다가 목숨을 건진 자는 다시는 배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성은 기능을 잃은 지 오래고 본성은 죽음을 시뮬레이션하며 같은 공간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 비행사가 보이지 않는 독일 전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같은 시간 한 노인(마크 라이런스)이 작은 배를 끌고 나와 덩케르크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자고 만류한 이가 많았지만 노인은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표정으로 추락한 아군 비행기로 향한다. 전장에서 외롭게 죽어갔을 아들을 떠올렸으리라.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총알받이로 죽어가는 꼴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그가 사력을 다해 배를 이끌고 나가지 않았다면 그날 덩케르크의 사망자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같은 시간, 연합군 전투기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본부로 돌아갈 연료가 이미 없었다. 덩케르크로 향하는 독일 전투기를 한대라도 더 저지해야만 했다. 본부의 명령과 달랐고 그는 돌아가도 괜찮았다. 공중전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는 여기서 싸우다 죽겠다를 의미했다. 찌푸린 눈가 외에 조종사(톰 하디)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내내 독일 전투기 꼬리를 향하고 있었다. 맞을 때까지 쫓았고 연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갈겼다. 연합군 전투기는 엔진이 꺼질 때까지 싸웠다. 프로펠러가 멎고 천천히 착륙했다. 그 전투기 조종사는 노인의 배에 오르지 못했다.

연합군 사령관(케네스 브래너)은 직감하고 있었다. 전멸당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걸. 육해공이 완전히 에워싸인 상황이었다. 거짓말처럼 민간인의 배가 덩케르크 해변을 뒤덮을 때까지 그는 소금기둥의 형벌을 받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자신의 명령을 믿고 따른 군인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부상자를 물속에 버리더라도 생존자 몇이라도 더 구해야만 했다. 본부의 지원은 없었다. 남은 전쟁을 대비해야 했으므로. 적의 섬멸이 아닌 최소한의 피해를 둔 퇴각만이 유일한, 간절한 바람이었다. 노인의 배를 비롯한 수많은 민간인 선박을 본 사령관의 눈엔 눈물이 한 움큼 차오른다. 머리 위엔 동력을 완전히 소진한 아군 전투기 한대가 느리게 추락하고 있었다.

겨우 살아난 자들을 다시 두렵게 한 것은 죄책감과 비난이었다. 세상이 우리를 저주할 거라고, 패배자라고 욕할 거라고.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고 이를 위해 악귀가 빙의한 듯 비겁했던 자신(해리 스타일스)을 용서하지 못했다. 돌과 썩은 달걀이 날아오겠지. 덩케르크 전투의 결과가 그랬듯, 겨우 빠져나온 군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예상과 달랐다. 전쟁의 어떤 순간은 같은 편이 더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위로 삼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절대악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전쟁의 사상자들이 겪었던 한없는 무력과 공포를 재현한다. 무심하게 날아가는 폭격기의 날개와 참혹한 폭격으로 침몰되기 직전 식빵과 쨈으로 배를 채우는 모습들, 총을 버리고 파도 속으로 생을 버리고 뛰어드는 남자와 아군(킬리언 머피)에 의해 죽은 소년(배리 케오간), 얼굴을 더듬으며 산 자의 온기를 확인하는 이까지. 잔인할 정도로 우아한 자태로 뻗은 해안에서 비행기는 불타고 시체는 떠내려 오고 몰래 도망치려던 배 안으로는 죽음이 차오르고 있었다. 한스 짐머의 갈퀴 같은 음악이 젖은 솜덩이처럼 짓누르고 있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목을 조이며 끌어당기는 낚싯줄 같았다. 영국 군인만 떠난 덩케르크에서 사령관은 배에 오르지 않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승선이 제한된 배를 두고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목숨을 걸고 대립하고 있었다. 사령관의 결정은 염치처럼 보였다. 모두를 구하고 엔진이 꺼지며 추락한 전투기를 보지 않았더라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덩케르크는 희생의 품격을 높인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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