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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18. 2017

프리즌, 롤모델이 될 수 없는 리더

나현 감독. 프리즌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프레임이 갈린다. 가족, 학교, 회사, 국가, 온오프라인 커뮤니티까지, 개인은 조직을 바꾸지 못하지만 조직은 가능하다. 조직은 리더 휘하 다수의 암묵적 동의로 개인을 개조한다.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은 균열되고 파멸한다. 조직의 색을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려는 개인을 조직은 가만 놔두지 않는다. 감옥이란 조직은 정익호(한석규)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습습하고 축축한 어둠의 벽으로 둘러 싸인 곳에서 왕을 꿈꿨다. 이곳의 질서를 온전히 체화한 후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아무도 나를 거스를 수 없다고. 그는 지상에서 외면당했고 온갖 지하를 거치며 세계의 중심, 유일한 일인자가 된다. 골목대장의 판타지를 실현한다. 때 묻은 자들을 거느리며 바깥세상을 주무른다는 공상에 빠진다. 반발을 용납하지 않는다. 관용이 낭비라는 점을 피와 비명으로 배웠을 것이다. 모든 죄수는 물론, 간수, 교도소장까지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는 다수에게 차갑게 명령하고 개개인을 뜨겁게 배려했다. 중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프리즌, 그의 왕국 안에서는 개 아니면 적이었다.


개망나니 송유건(김래원)의 등장은 처음부터 강한 의심의 대상이었다. 목숨을 얼마나 구해주건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대놓고 옆구리를 칼로 쑤셔대는 적들이 창궐하고 숟가락으로 눈깔을 파내도 배신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익호의 입지는 심리적으로도 좁아지고 있었다. 카드가 필요했다. 상황을 진정시키고 삐걱거리는 왕좌의 기틀을 제대로 유지할 카드. 송유건은 적절했다. 배신하면 팔을 자르고 목을 매달면 그만이었다. 감옥문을 열고 나가 청부살인을 실행하는 정익호였다. 그에게 살인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질서와 권력 유지를 위한 간편한 방식이었다. 송유건을 곁에 두고 활용했다. 송유건은 정익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팔을 뻗으면 칼이 닿을만한 거리에 정익호가 있었다. 둘은 서로를 믿는 척 처음부터 한톨도 믿지 않았다.


자신을 위협하려 던 자를 제거하는 것은 익숙한 권력 유지 방식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키려던 자를 이감하는 척 뺑소니로 비명횡사에 보낸다. 자신의 뒤를 캐려던 송유건의 지인 역시 고통 속에 죽인다. 송유건은 정익호의 외로움을 간파했지만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축조한 어둠의 왕국 속에서 정익호는 누구도 믿거나 의지하지 않았다. 꿈은 커갔지만 교도소 담장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을 주무른다는 착각 속에서 그의 미래는 사라지고 있었다. 교도소에 불이 붙고 소요 사태가 일어난 날, 정익호와 송유건은 서로의 본모습과 마주한다. 개처럼 싸우다가 정익호는 총알구멍이 난다. 왕국은 애초에 없었다. 정익호는 자기 세상에 갇혀 목줄을 풀 수 있다고 여기는 늙은 개에 불과했다.


개들이 투견 전 서로의 기를 죽일 때 눈을 부라리며 으르르 거리곤 한다. 정익호가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이 흡사 그러했다. 본능적으로 살기를 간파한 상대는 꼬리를 내리면 서열이 정해졌다. 늑대건 개새끼건 짐승은 마찬가지였다. 야생의 룰을 선택한 이들끼리 몰려다니며 세력을 과시했다. 문명과 격리된 시멘트 담벼락 안에서 정익호와 무리들은 어깨에 힘을 주며 권력을 취하고 복종을 강요했다. 정익호는 대가리였다. 홀로 어둠 속 권력에 취해 세상을 쥐고 있다 착각했다. 두려워했고 외로움을 자처했다. 불신이 습관이었고 잔혹한 처벌이 생존 방식이었다. 롤모델이 될 수 없는 리더였다. 현재의 인간들을 과거의 방식으로 길들이려 했고 따를지 언정 믿을 수 없도록 불안을 조장했다. 감옥 안이기에 그게 가능했고 감옥 안이기에 그게 한계였다. 또 다른 정익호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방식을 바꾸지 못한다면 같은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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