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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29. 2017

다시 100권의 지큐 코리아

지큐 코리아 200호를 보며

GQ는 지난 3년간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다. 2006년 12월 이후, 매달 20일은 전화를 통해 입고를 확인한 후 서점에 찾아가는 날이 되었다. 여자 친구는 보그를 보기 때문에 One+One으로 사면 다소 할인이 되는 이점이 있지만 별책부록이라도 있을라치면 바로 따로따로 집어 들었다. 네 권(각각 별책부록까지)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어깨와 손목이 뻐근했지만, 표지를 넘기는 감격에 비한다면 응당히 감내해야 할 영광스러운(?) 고난이었다. 글과 사진을 이리도 가까이하며 즐겨했던 책이 있었을까 싶다.


거의 모든(2권 빠짐) 페이지를 탐독했다. 문장 한 줄, 사진 한 컷이라도 해부하는 심정으로 쳐다보았다. 감탄했고, 감동했다. 언젠가부턴 제목도 다 읽기 전에 에디터의 이름을 먼저 확인하게 되었다. 행여 모르는 이름일까 봐. 소비의 패턴이 변하고, 상식과 태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방 안에 넣어 다니면서 보고, 지하철에서도 보고, 회사에서도 보고, 주말에도 보고, TV 켜놓고도 보고, 잠 안 올 때도 기어이 ‘봐야만’ 했다. 탐미적인 이미지들과 매혹적인 문장들, 시대를 읽는 명민함과 논쟁을 두려워 않는 당당한 지조 앞에 겸허한 심정을 잃지 않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좁은 견문과 아집으로 뭉친 내게 이런 울림을 주는 서(書)는 드물었다. 그것도 매달!

그런 GQ가 2009년 6월호로 통권 100호(한국판)를 기록했다. 100권을 주조하기까지 노고를 향한 고마움에 앞서 범접할 수 없는 성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들은 스커드 미사일 같은 공격수, 메르카바 전차 같은 미드필더, 이지스함 같은 수비수니까, 관중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100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선수의 기분과 어찌 같을까. 펜과 렌즈로는 다 드러낼 수 조차 없는 무서운 감각과 감성의 소유자들. 지금쯤 그들 중 누군가는 P.S에 밥벌이와 사회적 위치, 직업적인 자존감 사이에서의 복잡다단한 딜레마에 대해 성토의 문장을 어여삐 꿰고 있을지 모르겠다.

시력과 이성의 능력이 다할 때까지 곁에 두고 싶다. 매달 역경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생명력을 이어가 주길. 희생을 통해서만 찬란히 드러나는 불로의 권좌를 포기하지 말아주길. 편집장과 에디터들, 손사래를 치겠지만 그대들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일정 시간 이상 영웅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기억해주길. 무엇보다 GQ로서의 부담감에서 결코 벗어나지 말아주길. 잔인하게도, 팬으로서의 바람이다.



이상 지큐 코리아 100호에 대한 서신이었다.


2009년 6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오는 동안

지큐 코리아는 200호가 되었다.


사람의 나이 듦이 그러하듯

저절로 숫자가 늘어난 일은 아니었을 테다.


디지털, SNS, 출판'시장'의 변화,

종이책에 대해 여전히 저조한 반응들,

잡지에 대한 변화의 요구들,

달라진 채널들, 달라진 기호들,

독자들의 달라진 라이프 스타일과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하는 잡지의 숙명들.

지큐 또한 물성적으로 잡지임이 틀림없기에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적응해야만 했다.

달라진 서체들, 달라진 편집 디자인들, 달라진 에디터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꿔야 했던 결단들.


내부의 고뇌를 나는 모른다.

달라진 환경을 두고 넌지시 짚어볼 뿐

아마 내가 변화해야 했던 만큼

지큐도 그랬거나 더 했을 테지...

정도의 가늠만 할 뿐이다.


지큐가 오랜 시간 지표였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의 태도는 그때와 같지 않다.

지큐는 지큐의 길을 가고

나는 나대로 알아서 간다.

지큐는 그렇게 기준이 아닌 사진과 글로 이뤄진 책이 되었고

나는 결혼하고 아이가 두 돌을 갓 넘은 30대가 되었다.


에디터스 레터만 빠짐없이 읽었을 뿐

지큐 101호부터 200호까지 투여된

불과 혼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몇 자 적어 내려갈 수 있을 뿐이다.


지큐가

모델의 선과 면을 전시하는 동안

새 옷과 액세서리를 말하는 동안

시대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동시대에 필요한 태도를 말하는 동안


책과 음식과 바람과 건물을 보여주는 동안

대표 인물들과 그들의 성취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결혼을 하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아이가 생기고

여러 벌의 자라 옷과

여러 켤레의 로퍼와 운동화를 갖게 되었고

더 많아진 김훈 소설과 수전 손택의 책들

한스 짐머의 OST와 류이치 사카모토 음반들을 소장하고

몇백 편의 글들을 추려 몇 권의 책들을 출간하고

몇 번의 회사를 옮겼으며

몇십 편의 광고를 만들고

몇만 줄의 카피를 쓰고

몇백 편의 영화를 보고

몇십 통의 카드를 쓰고

몇 명의 사람들과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지큐에게서 익숙해진 취향들로 나와 주변의 것들에 대해 감각했지만

지큐는 절대적인 상징에서 과거에 충격적으로 좋았고,

지금도 좋지만 전 같지는 않은 아련한 존재가 되었다.   


11년째 카피를 쓰고 있다.

해외 화장품 브랜드 카피를 쓰고

빈티지 샴페인 브랜드 카피를 쓰기도 하고

블록버스터 영화 예고편 카피를 쓰기도 하고

프랑스에서 만든 자동차 카피를 쓰기도 하고

네덜란드에서 만든 맥주 카피를 쓰기도 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담배 브랜드 카피를 쓰기도 하고

글로벌 호텔 브랜드 카피를 쓰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커피 브랜드 카피를 쓰기도 했다

 

쓰기 위해 살았고 살기 위해 썼다.

모든 과정을 감정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다.

기쁨과 슬픔의 비중으로 나누기엔

설명하기 힘들고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수백 명의 사람과

그들과의 사건과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시작한 지점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여기까지.


지큐가 100권의 책을 더 만드는 동안

내가 살아온 궤적들에 대해 짚어본다.


단언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줄었다.

희미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지지한다.

그 중 지큐가 있다. 300권이 되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길. 존재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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