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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12. 2017

매혹당한 사람들, 여자들은 두 번 속지 않는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 매혹당한 사람들


1864년 남북 전쟁.

약하고 여린 이들끼리

무리를 이루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


여자들만의 공간에

다친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는 노예제를 둘러싼 전쟁에 참여한 적군이었고

여자들은 동요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싼다.


부상도 치료하지 않은 채

당장 신고한다면 죽을 목숨이었다.


무리의 리더 마사(니콜 키드먼)는

치료와 잔류를 결정한다. 

물론 그녀 역시 매혹당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먼지와 핏물을 지우고

혼자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군인, 존(콜린 파렐)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고

여자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했으며

이를 자신의 생명연장에 적극 활용하기로 한다.


다친 수컷 주제에 조신하게 정원이나 다듬었으면 좋았을 걸

그는 오랫동안 무리를 이루고 연대를 이룬 여자들을

홀로 단숨에 파괴하여 중심을 차지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렇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고

맘에 없는 칭찬을 흘리고

매력적인 눈빛과 미소를 던지며

마음을 훔치고 입을 맞추고 벗은 몸을 더듬는다.


하나의 팀이었던 여자들을 개인 경쟁구도로 분열시키고

자신이 상황을 지휘할 수 있다고 과신한다.

애초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자력에 의한 게 아니었음에도

그는 여자들이 밤낮으로 자신을 가지지 못해 안달하고 있고

초대된 식사 자리에서 온갖 치장을 통해 깃털을 다듬고만 있다고 여긴다.

자신은 어제든 방출될 수 있는 적군/다른 성별/이방인이라는 점을

수컷 특유의 허세, 자만, 스스로까지 속이는 멍청함으로 간과하고 만다.


그렇게 혼란을 조성하다가 날개 없이 추락한다.

그녀들은 더 이상의 혼돈을 좌시할 수 없었다. 

거세, 아니 다리를 자르기로 결정한다.

다시는 우리를 휘젓지 않도록.

분열시켜 생존과 결속을 위협하지 않도록.

정신과 신체를 절단해버린다.


성기, 아니 다리가 절단된 수컷은 절규한다. 

가면을 벗고 욕설을 퍼부으면 무리를 저주한다.

돌변한 태도를 통해 수컷의 진의가 드러나고

마사를 중심으로 여자들은 다시 한번 재집결한다.

그를 잔류시키는 것은 더 이상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불구의 상태에게서라도 육체의 희열을 얻으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그는 은밀한 매혹의 대상이 아닌 환부와도 마찬가지였다.

치료가 아닌 제거가 필요했다. 


처음 그를 발견한 방식으로.

마지막 그를 보낸다.


집단은 처음의 순수한 상태로 회귀한다.

여자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남자라는 위협을 자신들의 세상에서 제거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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