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참고 견딘 건 아닐까
도로시와 엄청 시끌벅적하게 놀아주는 편이다. 웃음 포인트를 하나 잡으면 반복 및 강화해서 밝은 리액션을 이끌어 내려고 하는 편이다. 아내가 신기해서 요리를 멈추고 촬영할 정도로 도로시가 자지러진다. 도로시의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 퍼지는 순간이 좋다.
매일 가사노동과 함께 안고 달래 주는 (그래서 매우 메마른) 아내보다 근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주로 몸을 크게 움직이며 놀아주는 편이다. 번쩍 들어 몸을 공중에 살짝 띄운다거나 어깨 위로 발을 디디게 해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게 해주곤 한다.
크게 웃고 즐거워해서 자주 해주는 편인데 어떤 뉴스를 보고 잠시 재고해보았다. 표현력이 부쩍 늘어 이제 좋고 싫고를 드러내는 편이지만 그 전엔 혹여나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을까 하고. 혼자 달리다 간혹 머리를 찧을 때마다 온몸이 다 철렁이곤 한다.
혹시 어떤 스트레스가 있음에도 나와의 교감을 중단하고 싶지 않아 참고 견디는 건 아닐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그렇게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이 있는 시간 표정과 움직임, 동선과 반응을 면밀히 살피려 하지만 완전할 수 없다.
도로시의 건강과 안전, 성장과 균형, 안전에 가장 깊고 정확하게 관여해야 할 사람이 나다. 엄마아빠 캐릭터를 넘어 남은 생 내내 부여받은 (그러길 원한), 기꺼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사명이다. 근거 없는 낙관과 무의미한 긍정을 챙기는 건 사고의 촉발점이다.
모든 소리와 말, 숨과 깜빡거림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목적을 떠나 기민해진 감각과 훈련된 시야가 있다면 지금 이 아이의 곁을 지키고 더 나은 방향과 자유로 안내하기 위해 몽땅 쏟아붓는다. 몸과 맘, 생각과 정신,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하나가 된다.
태어나 줘서, 곁으로 와줘서, 우리를 좋아해 줘서, 찾고 불러주고 말을 걸어줘서... 등의 연유로 감정과 시간과 노력과 사고를 공유하게 된 걸까. 어쩌면 관계 안에서 서로의 이익을 누리고 힘겹게 취하는 거래일까. 어떤 정의든 실존보다 연약하기만 하다.
도로시가 자랄수록 두려움도 커진다. 점점 부응하지 못하는 면들이 노출될까 봐. 작은 상처와 사고를 지켜주지 못해 차후의 흉터로 남을까 봐. 마음이 매일 작아지고 눈과 손은 바빠진다. 도로시에게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되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도로시가 매일 나와 우리에게 듬뿍 안겨주고 있는 이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고마움을 매일매일 더 크고 멋지게 갚아나가고 싶다. 너와 우리와 내가 이토록 끝내주게 예쁘고 아름다운 사이라는 점을 매 순간 증명하고 싶다. 키가 자라는 속도를 훌쩍 따라잡으며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만나 같이 지내게 된 게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지 함께 느끼며 내일과 다음 날을 기대로 채워주고 싶다. 아내와 만난 지 6161일, 결혼한 지 2942일, 도로시가 태어난 지 794일이 지나고 있다. 잠시 후 도로시는 소리 지르며 안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