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행복한 날이야

딸기 생크림 롤케이크를 싹 비운 도로시가 말했다.

by Glenn

도로시와 같이 있을 때 입는 바지 주머니엔 항상 머리끈/머리핀 서너 개를 넣어둔다. 눈 뜨자마자 헝클어진 도로시 머리를 쓸어 올려 묶어주거나 시간이 지나 다시 풀려가는 머리를 빗겨 꽁지를 만들어 서너 번 돌려 감아 묶어준다. 비교 불가의 즐거움.


아내가 도로시를 재우기 전 머리핀을 제거했다. 도로시가 아내를 퉁명스럽게 쳐다봤다. "왜 뺐어! 이거 아빠가 예쁘게 꽃아 준 건데 왜 뺐어~!"


"오늘은 행복한 날이야."

딸기 생크림 롤케이크를 싹 비운 도로시가 말했다.


불 꺼진 거실, 도로시는 아내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해요"


시끄러워 어~

말 좀 하지 마아~

나도 말 좀 하자아~

밥먹을때이야기하는거아니야아~

왜 자꾸 말하는 거야 아~?

이상 도로시가 요즘

가장 자주 하는 웃긴 말


아내와 내가 이야기할 때 서둘러 나오느라 처음으로 도로시에게 인사(부둥켜안고 마구 흔들며 볼 이마 정수리 뽀뽀 10회 이상)를 못하고 나왔다. 방금 카톡이 왔다. 도로시가 찾았고 없다는 걸 알자 이렇게 말했다고.

"뽀뽀도 안 해주고 갔네."


"사랑하니까 미워하는 거야"

-도로시(30개월)


(반바지 차림의 내 정강이를 쓰다듬으며)

"도로시도 아빠처럼 다리털 많았으면 좋겠다."

-도로시(30개월)


몹시 더 뭉클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같이 TV 보다 툭 머리를 기댈 때

다리를 베고 누울 때

잠들며 "손 잡아주세요"할 때

느닷없이 "사랑해요"말할 때

같은 순간 웃음이 터질 때

안아 재우던 중 목에 더 양팔을 감을 때

도로시와의 모든 순간, 또는 지금


잠든 도로시는 이따금

해맑은 웃음소리를 내곤 한다.


도로시가 이른 아침 창가에 누워 있었다.

창 밖 풍경 어딘가를 말없이 응시하며.

나: 도로시 무슨 생각해?

도: 나는 아빠 생각해

나: (뭉클)


아빠 오늘 일찍 왔어요?

응 도로시 보고 싶어서 일찍 왔어요

아빠 보고 싶었어요

그랬어?

아빠아 하고 불렀어요. 근데 아빠 없었어요.

(주르륵)


신발장. 우당탕탕 뛰어온다.

아빠 뽀뽀 안 해주고 가는 거야?

어 그래? 미얀 (쪽)

보고 싶었는데

...(글썽)


"아빠랑 놀고 싶은데에에에

아빠는 왜 회사 가는 거야?"

-도로시(30개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도로시는 오늘도 '엄마'로 작사한 노래를 부르며 어둑한 거실 공기를 민트색으로 물들이다가 잠이 든다. 아빠가 아침에 뽀뽀만 해주고 안아주지 않고 사라져서 서운했다는 이야길 삐죽거리며. 너가 도망갔잖아. 다시 돌아와 문틈으로 인사하는 날 아련히 바라봤지만.


“나도 어른이 돼서 커피 먹고 싶어요.”

아침에 도로시가 그랬다


“아빠 올 때 맛있는 거 사 오세요.”

도로시가 아침에 한 말

하루 종일 생각났고 약속 지킬 시간이다


13.5

도로시 963일 몸무게


귀가.

혼자 저녁을 먹는다.

아내와 놀던 도로시가 다가온다.

안는다.

아빠 보고 싶었어?

얼마큼?

엄청 많이요 이만큼

도로시 왼쪽 뺨이

오른쪽 옆구리에 붙어 있다.


오늘은 일찍 끝나는 날이라 도로시에게 빨리 돌아갈 수 있다. 신남.


도로시는 요즘 공룡에 매료되었다. 얼마 전 미니북+피겨 세트를 하나 사줬는데 책은 이미 너덜너덜 한 줄만 읽어도 관련 공룡이름을 부르짖는다. 눈뜨고 자기 전까지 보고 보고 또 본다. 회사 근처 서점에 들러 공룡책을 더 사려다, 공룡 중형 사이즈 피겨, 공룡 찍찍이, 공룡 조립장난감까지 담았다.


땀 흘리는 도로시에게 부채질을 해주면 도로시는 바람을 잡으려 팔을 뻗어 휘적거린다.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지 못한 거의 모든 장면들이 게으른 기억에서 휘발되고 마는데 저 장면은 오래 아른거린다. 이따금 망중한에 잠긴 도로시는 혼자 있고 싶다며 등을 떠밀고 문을 닫거나 결계를 친다. 웃겨.


상대를 다치게 할 정도로 행동이 거세진 도로시를 달랠 때 쓰는 최후의 수단이란, "(도로시가 때려서) 엄마 아빠가 병원에 가면 넌 누구랑 노냐?"이다. 세상에 아니 아직은 엄마 아빠가 세상에 전부일 수밖에 없는 아이인 줄 알면서도 동원한다. 아이는 순간 동공을 정지시킨 후 이내 다시 난동을..(후략)


'너를 키운다'는 경험


도로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도로시가 갖고 싶어 했던

장수하늘소와 사슴벌레 피겨를 들고

집으로 간다.


주말에 찍은 도로시 사진으로 프린트 티셔츠를 만들어 주문했다. 괜찮으면 도로시의 다른 사진으로 추가 주문할 예정. 팬클럽 굿즈 같은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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