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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Nov 09. 2017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의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원신연 감독. 살인자의 기억법: 새로운 기억






기억은 편집된다. 증거와 증인만 없다면 편집된 기억은 사실이 된다. 편집은 기억의 주체에게 무조건 유리하게 이뤄진다. 연쇄살인이라는 팩트와 인간적 양심이 격돌하는 틈 역시 편집이 작용한다. 나에게 인간적 양심을 덧입히고 연쇄살인이라는 비인간적 행위는 다른 대상에게 씌워진다. 사실은 내가 했지만 중장기적 기억으로 옮겨지는 사이 타인의 만행으로 바뀐다. 영문도 모르는 사이 타인은 (나에게) 살인자가 된다. 인간적으로 바뀐(인식한) 나의 적이 된다. 내가 (더 이상) 저지르지 않는 살인을 저지르는 나쁜 놈. 나와 내 딸을 노리는 천하의 죽일 놈. 살인의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냐, 누가 살인을 저질렀느냐 보다 흥미로웠던 건 김병수(설경구)가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일 때마다 삽입되는 다른 기억의 이미지였다. 기억하는 사건과 저지른 사건, 기억하는 사람과 실제로 만난 사람, 본 것과 저지른 것 등 실제와 이미지 사이에서 김병수의 기억은 점점 애초와 다른 버전으로 업데이트된다. 변수는 확증편향이었다. 최근 기억부터 완전히 망각된 상태와 온전한 상태의 김병수는 너무 달랐다. 그 사이 김병수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녹음기를 켠다. 자신이 본 것과 알게 된 것을 기록한다. 문제는 그 기억이라는 게 김병수의 입장이었다는 것. 기록하고 다시 들으며 확신에 이른다. 믿고 싶은 것을 더더욱 믿게 된다.


김병수의 입장에서 김병수는 더 이상 연쇄살인마가 아니다. 애초 '이유 있는' 살인을 저질렀고 이제는 그마저도 행하지 않는다. 어쩌다 딱 걸린 새로운 살인마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민태주(김남길) 그놈은 나와 내 주변을 노리며 새로운 살인마저 내(김병수)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 더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놈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고 딸은 놈에게 너무 가까이 있다.


모든 장면이 김병수의 기억에 의지하고 있다. 새로운 살인과 새로운 범인, 전복사고와 접촉사고, 공익을 생각한 살인과 사익에 더 가까운 살인, 다른 환영을 보며 딸 은희(김설현)의 목을 조르고 민태주가 은희의 얼굴을 피범벅으로 만든 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행위와 민태주의 악행이 시시각각 교차한다. 나보다 먼저 숨을 거둔 사람들이 나타나 내 상태를 염려하고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고 의지하며 은희를 맡긴다. 은희는 사라지고 나는 기억이 없다.


김병수의 생존본능과 살인본능 중 뭐가 더 우세한 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의 머리에서 지운 살인본능을 몸이 되살려 꺼내었고, 수사망을 벗어나려는 생존본능이 망각 증세마저 무기로 활용하게 했다. 남을 죽이려는 욕망과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려는 본능이 양 날개가 되어 활개 치고 있었고 새로운 살인자를 창조하고 기억을 조작하며 완전히 새로운 기록과 증언으로 탄생하고 있었다. 인간 김병수가 딸을 죽음으로부터 가까스로 지키려는 동안에도 살인마 김병수는 본능과 몸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가책이 없다면 폭력은 자유다. 기억의 편집을 통해 살인은 쾌락이 된다. 타인은 완전히 배제된다. 스스로가 납득했다면 남을 속이는 일은 게임보다 재밌다. 공식적으로 과거가 세탁되었다면 남은 일은 다시 본능을 깨우는 일이다. 은희는 결국 살해당할 것이다.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쾌락을 끊지 못하는 살인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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