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Nov 10. 2017

남한산성, 누구의 나라도 아닌 조선

황동혁 감독. 남한산성

김상헌(김윤석) 최명길(이병헌) 대립은 치열했다.  한마디   줄로 조선의 운명이 바뀔  있었다. 인조(박해일) 답이 없었다. 한쪽을 택하는  다른 한쪽을 버리는 것이었고 택한 쪽도 버리는 쪽도 조선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청과  사이에서 조선은 절벽에 걸려 있었고 남한산성 안쪽까지 내몰려 있었다. 칸이 직접 움직였고 그의 결정 하나에 조선은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침묵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고 산성을 향한 칼과 창끝이 좁혀오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 위의 백성들은 얼어 죽어 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눈밭 위의 시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남한산성은 조선  자체였고, 갇힌 모두가 산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의 차이를 서술하는 게 의미 없어 보였다. 하지만 둘은 달랐다. 초상집에 드나들 듯 임시로 마련된 궐 안에서 왕과 관료들이 국운을 논하며 비통함에 젖어 있을 때, 바깥의 병졸들은 혹한에 사지가 꽝꽝 얼어 피부가 벗겨지고 청군의 무참한 칼날에 팔다리가 잘려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민이 끝나지 않는 동안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천한' 계급의 생명들은 꺼져가고 있었다. 베인듯한 느낌과 직접 베인 상처는 분명 달랐다. 전자는 궐 안, 후자는 밖. 모두 절박했지만 고통을 체감하는 방식은 달랐다. 그 차이는 영영 좁혀지지 않았다. 적군에게 길을 안내해서 식량을 얻으려 했던 노인(문창길)과 적국에게 귀화하다시피 하며 명령과 상소를 통역했던 자(조우진)의 입장은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조선이 해준 게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추위에 떨지 않는 자들이 모여 대립하는 조선은 그들의 처지를 입에 담았지만 결코 그들의 안위를 위한 진짜 결정은 하지 않았다. 조선은 늘 자신들의 처지와 동일시되었으며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성들의 처지는 늘 예상과 상상력에 의존하곤 했다. 결국 그들은 어떤 변화도 도출하지 못했고 성벽을 무너뜨렸다. 왕은 혼란스러워만 했고 최고 통치자가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 나오지 못한 채 곤란함을 드러냈으며 결국 충신들이라 믿는 자들의 견해에 따라 굴종을 선택한다. 너무 늦은 때였다. 이미 너무 많은 자들이 산과 성 위에서 죽은 후였다.


균형은 없었다. 삶과 죽음을 숱하게 논했지만 가까워진 건 칸의 대포알뿐이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피와 살점을 뿌리며 싸운 자들에게 돌아오는 건 형벌과 처형뿐이었다. 누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 나라를 믿고 싸울 수 있겠는가. 넓은 시야와 먼 앞날을 내다보는 결정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모든 집이 무너지고 가족들이 죽어 없어진 마당에 현명한 판단과 결정이란 어떤 의미와 담보를 지닐 수 있나. 왕은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고 관료들은 내부의 적을 없애 자신의 자리를 견고히 하려는 매국노 천지였으며 극소수의 충신들은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타의적 무능에 갇힌 자들이었다. 심지어 먼발치에서는 목숨 걸고 전한 명령을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무시해버리는 비극이 동시간대에 벌어지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조선은 한마음 한뜻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칸은 몰락을 구경하러 온 것 같았다. 남한산성 안팎에서 조선이 망해가는 모습이 불꽃놀이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인조가 칸 앞에서 머리를 땅바닥에 세 번 찧고 아홉 번 조아리며 완전한 패배를 시인할 때, 최명길은 울고 김상헌은 할복한다. 최명길의 제안은 정신을 죽여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었고 김상헌의 입장은 선 채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절대로 굽히지 말자였다. 관료 모두가 최명길의 목을 베자고 했지만 인조는 현실을 택했고 지원군을 기다리던 김상헌은 눈물 끝에 죽음을 택한다. 청이 쏟아내는 모든 칼과 활을 맞아가며 온몸으로 저항했던 이시백(박희순)은 침묵한다. 모두가 시대와 싸우고 있었지만 가장 많은 피를 뿌리고 부하들을 잃은 그였다. 이시백의 조선은 너무 약했다. 그런 조선이 가여워 칼로 지켜내려 했지만 베어도 베어도 적들은 줄지 않았다. 등에서 찌르고 앞에서 베고 있었다. 이시백은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보았고 그만큼 실제적 죽음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목을 기꺼이 칼 앞에 내던지지 않았다. 사력을 다했고 사력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싸움이 멈춘 후 무너진 조선의 성벽 위에서 이시백의 눈빛은 여전히 삶과 죽음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다. 이시백은 김상헌, 최명길과 달리 생각을 입에 담지 않았다.


철학적 담론이 진정 조선을 바른 길로 안내했는가. 칸의 행차는 조선의 자멸을 의도함이었고 그게 칸에게는 군의 위치에서 신하 된 자에 대한 존중이었다. 작은 땅 위에서 두려움에 몰려 같은 편을 공격하며 밀어내는 살풍경은 성벽이 무너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칸의 대포가 조선의 논쟁을 멈추게 했고 땅 속까지 숙여 엎드리게 하여 대치를 종결시켰다. 최명길 같은 자가 100명이 있었던 들, 날아오는 대포알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이시백이 100명이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남한산성을 무너뜨린 건 조선의 왕과 관료들이었고 죽고 다친 건 병졸과 백성들이었다. 말과 글은 칼과 대포를 이기지 못했다. 추위조차도 뚫지 못했다. 무력하기 그지없었고 어떤 문장가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방법도 누구도 조선을 구할 수 없었다. 남한산성에 이르러서야 조선은 깨달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의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