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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n 21. 2018

개들의 섬, 좋은 개 나쁜 개 이상한 개

웨스 앤더슨 감독. 개들의 섬







미래 일본. 개가 너무 많아 폐기하기로 한다. 인간이 사랑하는 대상을 다루는 흔한 방식. 찬성과 반대가 피켓을 들고 싸우고 선거 결과를 가를 이슈가 된다. 소년 아타리(코유 랜킨)는 비행기 조종석에 오른다. 잃어버린 개 스파츠(리브 슈라이버)를 찾아 창공을 가른다. 개들의 섬으로 날아간다. 


섬은 쓰레기장이다. 쓰레기와 쓰레기 같은 개와 아직 쓰레기처럼 보이지 않는 개들이 섞여 있다. 이 개와 저 개가 짝짓기를 했다는 소문이 돌고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음식쓰레기를 차지하려 서로 물어뜯는다.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정책이 겹치는 풍경들. 과거에 수많은 인류를 학살했고 지금도 짓누르고 있는 인간의 악마적 행태를 보여주는 소수의 결정과 다수의 실행. 개들은 모여 각자의 출신지를 밝히고 동반 몰락한 서로의 처지를 동정한다. 그리고 저 멀리 추락하는 아타리의 비행기. 인간이 나타났다. 잃어버린 스파츠를 찾는다며.


인간 대 인간보다 진한, 개들에 대한 사랑을 품은 이들이 그러하듯, 주인을 향한 개들의 충성 또한 각별하다. 아타리는 버려진 개들의 희미해진 충성심에 불을 지른다. 환상적인 맛의 비스킷과 온몸을 뒤덮는 거품 목욕,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개들을 감동시키고 충성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잃어버린 스파츠를 같이 찾기로 한건 물론이다. 아타리의 태도는 자기를 막아선 모두를 물어뜯으려던 치프(브라이언 크랜스톤)마저 사랑스러운 충견으로 바꿔놓는다. 아타리는 의도하지 않았다. 자신의 개에게 그러했듯, 모든 개에게 따스하고 다정하게 대해줬을 뿐. 아타리는 마침내 자신의 개와 상봉하지만 더 거대한 고난이 닥친다. 세상 모든 개가 몰살될 위기에 처한다. 고래도 죽일만한 독극물이 섬 위를 뒤덮는다. 버튼 하나면 모두(모든 개)가 죽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유대인이 그렇게 말살되었듯. 


개 반대 세력을 등에 업고 선거 승리를 노리는 고바야시 시장(쿠니치 노무라)은 개가 병을 옮겨 인류 존속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이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자신의 입지를 흔들 경쟁자마저 암살한다. 버림받은 개들이 모여 궁리하지만 주인이었던 작자들이 저렇게 작정하고 말살하려는데 저항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스파츠를 찾는 아타리의 존재는 개들 사이에서 유일한 희망으로 부상한다. 오직 개들의 입장을 대표하고 말살을 저지할 유일한 대안. 아타리는 스파츠가 곁에 없을 때의 상실감을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었다. 아타리는 개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일본 배경,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때 묻고 헝클어진 털로 둘러싸인 개들 다수 등장, 속을 알 수 없는 거의 무표정에 가까운 주인공 소년, 이런 조합은 긍정적인 예상을 도출하기 어렵다. 그런데 감독이 웨스 앤더슨. <문라이즈 킹덤>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창조한 비주얼 천재 슈퍼스타. 잠시 턱을 괴게 되지만 흥행성적은 물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처참하게 희미해진 전작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가 떠오르는 순간 절레절레. 그런데, 오프닝 시퀀스가 펼쳐지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눈과 귀가 고정된다. 완전히 장악당한다. 영화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지닌 작품의 탄생을 마주하게 된다. 인형 개들의 대사와 걸음걸이, 눈빛 하나하나에 가슴팍을 부여잡게 된다. 극 중에서 치프는 "고마워" 라고 두 번 말한다. 아타리가 건낸 비스킷을 먹었을 때, 넛메그(스칼렛 요한슨)의 입맞춤을 받았을 때. 개 눈망울에도 내 눈망울에도 뜨거운 눈물이 그득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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