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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20. 2018

플로리다 프로젝트, 버려진 사람들의 아이들

션 베이커 감독. 플로리다 프로젝트

그곳엔 버려진 어른들이 몰려 산다. 각자의 객실이 있고 방세를 내지 않으면 다시 내쫓긴다. 버려진 어른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그들 모두가 불행하다고 단정 짓는  무례하다. 각자의 사연만큼이나 버티는 이유들이 있고 죽지 못해 산다기보다 생을 조금 낮은 숨소리와 속도로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평균의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란  있다면 그들의 수준은 미치지 못할 것이다. 결여된 가족 구성원, 아빠를 찾지 않는 아이들, 또는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사라진 엄마들, 핑크색 건물 안에 내몰린 삶들이 각자의 구김살을 지닌  하루하루를 버틴다.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즐겁지라도 않으면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아이들은 마구 마구 즐거운 에너지를 내뿜는다.  위에 침을 뱉고  집을 불태우고 여기저기 아이스크림을 흘리고 피자와 탄산음료로 끼니를 때우고 처음 보는 아이와 금방 친구가 되어가며. 누구도 그들에게  학교에 다니지 않냐고 묻지 않는다. 무니(브루클린 프린스)  아이들   명의 이름이다.

무니는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둘이 산다. 핼리는 좁은 방에서 시종일관 담배를 피운다. 온몸엔 문신이 가득하다. 도매점에서 향수를 떼다가 거리의 외지인들에게 싸게 판다. 불법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일자리가 없고 더구나 미혼모를 써줄 곳은 너무 없다. 같은 건물 이웃의 아이를 맡아주고 와플을 얻어먹는다. 가끔 공익단체 같은 곳에서 공짜 식빵도 준다.  무니가 받아온다. 무니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같이 노는 아이들과 구걸하고 돈이 모이면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를 사서 나눠 먹는다. 무니는 너무 해맑고 귀엽고 천방지축이다. 무니를 보며 도로시 생각이 많이 났다.  없이 웃고 마구 장난치고 도망 다니고 자기 멋대로지만 엄마와 너무  통하는 아이. 다르다면 무니의 아빠는 행방이 없고 도로시에겐 내가 있다.

무니와 같은 아이들이 건물에 천지다. 하루 종일 어딘가를 돌아다닌다. 아동성애자로 추정되는 짐승이 다가오면 건물 매니저 바비(윌리엄 데포) 저지한다. 바비는  객실의 문을 두드리며 방세를 받아야 해서 매번 투숙객과 실랑이를 벌어야 하지만 그는 그곳의 아이들에게 연민이 가득하다. 과하게 다정함을 표현하지 않을  꼬마 녀석들의 안전을  신경 쓰고 밀린 방세를 조금 기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건물주가 아니고  봐줄  없다. 무니네 방세가 밀리고 있었다. 핼리는 무니를 욕실로 밀어 넣고 음악을 크게 틀어준다. 무니는 욕실에서 혼자  논다. 이후 방세를 다시   있게 되었다. 바비는 의심한다. 핼리는 무직인데 돈의 출처가 불분명했다. 바비는 CCTV 관리했다. 핼리의 방세가 어디서 나오는지   있었다.

무니에게 차마 보여줄  없었던 모습, 핼리는 성매매를 통해 방세를 충당하고 있었다. 남편 없이 아이와 내몰린 , 구해지지 않는 일자리, 밀린 방세, 여기 핑크색 건물에서 마저 내쫓긴다면 둘의 삶엔 다음 페이지가 없었다. 건물에 소문이 돌고 아동 관리국에서 찾아온다. 핼리의 부모 자격에 대한 검토가 필요했고 그동안 무니는 위탁 가정에 맡겨져야 했다. 임시라고 했지만 영영이  수도 있는 노릇, 아니 거의 그렇게   확실했다. 정복을 입고 찾아온 사람들 앞에서 무니의 얼굴이 굳는다. 엄마와의 이별은   번도 짐작조차 못했던 공포였다. 도망친다. 미친 듯이 길을 가로지른다. 친구 집의 문을 두드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무니는 눈물 흘린다. 친구가 이유를 묻지만 무니는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없다. 어떤 어른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미칠 듯이 무서운 상황이 닥쳤다는 거다.  공포 앞에서 무니는 무너지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친구는  이상 묻지 않는다. 무니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달린다. 자신을 친구로 받아준 무니에게,  함께 놀아주고 들판의 소를 보여주며 여기가 사파리라고 소개하던 무니에게,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없을  같은 무니에게 마지막 선물 같은 풍경을 선사하려 한다. 그곳엔 꿈과 희망이 가득할까.  어른들이 잡으러  텐데.  소녀는 괜찮을까. 영화는 어떤 답과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버려진 어른들이 사는 건물을 예쁘게 색칠하고  속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알록달록 토핑처럼 올린  눈에 보이는 것들 뒤에 숨겨진 현실의 비극과 암담함을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끼운다. 아빠는 없고 엄마는 감옥 가고 아이가 홀로 위탁가정에 맡겨지는 현실. 희망은 거짓말이지만 영화는 침묵의 포옹과 마주 잡은 작은 손으로 온기를 남긴다. 금세 식겠지만 오래 기억될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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