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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21. 2018

몬태나, 모든 증오가 끝나는 그곳

스콧 쿠퍼 감독. 몬태나




전쟁에 참여한다. 학살을 경험한다. 학살의 일부가 되어 적들을 도륙한다. 전우가 죽었고 조셉(크리스천 베일)은 목격했으며 더 잔혹하게 복수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육은 계속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은 정복당했다. 남은 인디언들은 모호한 경계 안에서 힘없는 백인들을 죽이고 있었고, 군인들은 그들을 잡고 가두어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있었고 무차별한 학살에 대한 반대운동도 일어나고 있었다.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평화와 변화를 과시하고 싶었다. 조셉은 자신의 전우를 죽인 인디언 우두머리, 옐로 호크 추장(웨스 스투디)을 몬태나까지 호송해야 했다. 강압적 조치였다. 조셉은 거부할 수 없었다. 단 한시도 죽은 전우를 잊어본 적 없었다. 그는 절규했다. 


죽음엔 논리가 없다. 이성도 작용하지 않는다. 어떤 죽음은 조짐조차 없다. 눈 앞에서 남편의 머리가죽이 잘리고 활과 총에 맞아 죽는다면, 10살 남짓한 두 딸과 품 안의 갓난아이가 총에 맞아 죽는다면, 누구도 제정신일 수 없다. 대립과 갈등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곳에서 거주하던 로잘리(로자먼드 파이크)의 가족은 몰살당했다. 남은 삶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남편과 세 아이를 묻기 위해 땅을 파야할 날이 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게 대체 아니 왜 일어나야 하는 일이었을까. 신의 무관심은 언제까지일까. 자신보다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로잘리의 울음소리가 어둠이 대지를 뒤덮는 속도마저 늦추고 있었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무덤가에 잠든 육신은 아무리 짜내도 눈물기가 마를 수 없었다. 산자는 살아야 한다지만, 산자는 더 이상 산자가 아니었다. 삶은 형벌이었다. 죽은 자는 잊을 수 없었다. 조셉과 마주쳤고 같은 운명들은 같은 길을 떠난다. 


원수들. 오랜 전쟁 끝에 영토와 역사, 부족과 미래를 빼앗긴 인디언 추장, 그들과의 살육전에서 전우를 잃은 군인, 잔존한 인디언들에게 가족들을 몰살당한 여인, 모두가 적들이었다. 모두의 증오가 대지와 창공에 흩뿌려져 있었다. 복수는 의지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무명의 사람들이 무병의 가해자들을 죽이고 그들은 다시 가해자가 되어 우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싸움이 이어지며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죽고 떠나고 우울증에 걸려 자살했다. 어떤 죽음도 복수의 방식으로는 희망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조셉은 언제가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싸움은 끝났고 복수는 부질없으며 우리는 모두 이용당했고 모두 희생자이자 피해자라고. 적들도 죽은 동료들도 완전한 잘못도 그렇다고 정의로운 것도 아니라고. 우린 그저 서로에게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한 거라고. 


평생에 걸쳐 싸우고 결국 혼자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깨달음이었다. 한 명씩 한 명씩 곁을 떠날 때마다 조셉은 슬픔에 온몸을 떨며 붉어진 얼굴을 감싼다. 과거에 손을 적셨던 핏물은 영영 씻기지 않았다. 다시 현재의 동료들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과거의 광기는 이제와서는 시대착오적 태도가 되었지만 개인이 이런 변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남은 분노를 해소해야 했고 그 결과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자, 조셉을 추앙하던 자는 현재 살인마가 되어 있었다. 조셉이 제안한 평화를 그는 실망하며 거절한다. 인디언 가족을 몰살한 죄로 교수대로 끌려가던 찰스(벤 포스터)에 조셉의 변화는 배반이었다. 그에게 인디언은 영원히 악마였다. 조셉이 한때 어른 아이 닥치지 않고 죽였던 것처럼, 찰스에게 살육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었다. 


홀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은 삶은 너무 짧았다.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으로 내내 고통받을 것이다. 빈자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지지 않는다면 남은 평생 영혼과 육체를 절뚝이며 살아가야 한다. 본능적으로 타인에 대한 의지를 더듬게 된다. 눈물을 숨기거나 얼굴을 파묻을 따스한 곳을 찾게 된다.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다가가게 된다. 더 살아도 되는지 자문하게 된다. 오랜 오해 속에서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고 파리하고 초췌해진 몸과 맘으로 남은 시간을 지나야 한다. 살기 위해 진실을 갈구하게 되고 증오를 거두며 자신과 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로잘리는 인디언 소녀를 거둔다. 조셉은 동행하기를 망설인다. 열차가 떠나기 전에 오르지 않는다면 다시 영영 홀로 지내야 할 것이다. 개척이란 미명 아래 인간은 대륙의 역사를 피로 물들였다. 현재는 그 핏물과 울음소리 위에 도로와 건물을 지었다. 미국은 증오를 해소하지 않았고 그 위에 그저 자본과 욕망을 들이부었을 뿐이다. 몬태나는 천국과 동의어로 들렸다. 죽기 전까지 다다를 수 없는 곳. 모두가 염원하지만 아무도 증언할 수 없는 곳. 현실에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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