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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y 23. 2018

클레어의 카메라, 넌 정말 예쁜 영혼을 가졌어

홍상수 감독. 클레어의 카메라








클레어(이자벨 위페르)는 사진에 집착하지 않는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고 즉석에서 인화되는 사진을 같이 보며 이야기한다. 피사체가 되어준 이가 원하면 바로 준다. 클레어에게 사진은 결과물의 소유가 목적이 아닌 듯 보인다. 사진을 찍는 행위, 사진을 찍는 순간, 피사체와 자신과의 일치되는 순간, 그 행위를 통해 관계를 이야기하고 과거와 미래를 구분 지으며 변화 이전의 포착을 이야기한다. 클레어에게 사진에 찍히는 순간과 사진에 찍힌 후의 피사체의 상태는 완전히 다르다. 마주치는 거의 모든 대상에게 예쁘다고 말하고 어색함을 순식간에 지우며 친밀하게 다가간다. 클레어에게 인간과 관계는 시로 쓰일 수 있는 글감의 일부다. 클레어는 깐느 영화제가 열리는 곳의 주변 도심을 돌며 전만희(김민희), 남양혜(장미희), 소완수(정진영)를 만난다.


전만희와 남양혜, 남양혜와 소완수, 전만희와 소완수, 세 커플은 각각의 시간대에 뒤엉켜 1:1로 자신과 타인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셋은 깐느 영화제 시즌을 맞아 필름마켓 참여와 감독 행사를 위해 프랑스에 방문한다. 직장상사 남양혜는 5년 동안 같이 일한 직원 전만희에게 잠깐 미팅을 요청하고 커피를 마시며 해고를 통보한다. 순수해 보이지만 정직하지 못하다. 그건 타고난 거라 바꾸지 못한다. 가 이유였다. 감독 소완수는 과거 전만희와 잠깐 연인 사이였고 남양혜와 오랜 연인 사이로 보인다. 소완수는 폭주를 즐기고 남양혜는 말리지 못한다. 둘 사이에 전만희는 암초와 같다. 다르다면 남양혜는 암초가 싫고 소완수는 잊지 못할 뿐이다. 클레어의 사진에 담긴 전만희를 보며 남양혜와 소완수는 사뭇 놀란다.


느닷없이 연인과 사회에서 혼자가 된 전만희는 서성인다. 클레어와 마주하고 금세 가까워진다. 아름다운 피사체를 보면 참지 못하는 클레어의 카메라가 전만희를 찍고 대화가 시작되고 전만희는 클레어와 걸으며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른다. 클레어의 지난 사진 속에서 전만희는 소완수, 남양혜를 마주친다. 불편하고 아련한 과거의 조각들. 도망칠 수 없는 기억들. 전만희는 파티에서 실제로 소완수를 마주친다. 소완수는 말끔한 턱시도를 차려입은 채 전만희 곁에서 말을 잇는다. 전만희의 짧은 옷차림을 지적한다. (넌 정말 다 예쁘고 영혼도 예쁘고 중얼중얼 거리다가) 남자들의 싸구려 판타지의 대상이 되고 싶냐며 힐난한다. 전만희는 이 새끼가 갑자기 나타나 왜 이 지랄을 떠는지 알 길이 없고 다만 억울할 뿐이다. 소완수는 너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여전히 같이 있고 싶다는 심정을 꼰대 한남 극혐 스타일로 시전 한다.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전만희는 소완수를 밀어내고 울음을 터뜨린다. 클레어의 카메라가 다가간다. 전만희는 피사체가 되길 거부한다.


남양혜의 질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전만희를 해고하는데 이른다. 저런 방식의 해고가 받아들여지는 구조가 웃기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남양혜는 과거 어리고 예쁜 시절의 연애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여전히 소완수에게 예쁨 받기를 갈구한다. 애원한다. 이를 위해서 어린 방해자를 기꺼이 제거한다. 그리고 소완수에게 결별 통지를 받기에 이른다. 사업 관계는 남기고 연애 관계는 끝내자고 한다. 남양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급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았던 전만희가 그랬던 것처럼. 남양혜는 전만희의 단점을 언급하며 깎아내리고 소완수에게 자신을 더 가까이해주길 애원한다. 과정에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뿜어 나온다. 남양혜는 자신보다 영어를 못하는 전만희가 자신의 사랑을  빼앗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양혜는 죽을 때까지 소완수에게 사랑받고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작은 테이블을 가득 채운 빈 술병들 사이에서 남양혜와 소완수는 과거를 소환하고 배시시 깔깔깔 손을 맞잡고 웃는다. 금세 잊힐 말들이 둘 사이를 떠돈다. 대상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해결책이 나올까. 전만희의 꽁꽁 싸맨 박스는 다시 풀리지 않을 것이다. 셋의 과거는 봉인되었고 사진은 단편적인 추억과 오해만 불러일으킨다. 남양혜는 결코 소완수의 사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소완수가 사랑한 건 누구도 아닌 술이었다. 전만희와 다시 이어진다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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