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Jul 09. 2018

아무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맷 팔머 감독. 아무 일도 없었다






얻어터져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의자에 묶인 본(잭 로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전조가 있었을까. 애초 떠나지 않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누구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죽었다) 친구와의 사냥 여행. 쇠락한 동네에 도착하자 모든 시선이 이방인을 향한다. 모든 이들이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좁고 작은 동네. 한 사람에게 한 마디를 하는 순간 모두에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곳. 어색한 호의와 경계가 곁을 맴돈다. 사냥터로 떠난 아침, 임신한 아내를 집에 두고 온 본의 총구가 떨린다. 옆에 선 마커스(마틴 맥캔)가 어서 쏘라며 재촉한다. 쏘고 정확하게 맞춘다. 사슴은 사라졌고 뒤에 있던 소년의 이마에 총알이 박힌다.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한다. 그의 손에도 총이 들려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흔들렸던 표적, 망설였던 발포,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최악의 결과. 숲은 지옥이 된다. 본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떠난 이성이 금세 돌아올 리 없었다. 마커스의 총이었다. 이성을 놓은 건 본뿐이 아니었다. 소년의 아버지의 눈빛이 바뀐다. 총을 든 팔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다시 한번 울리는 총성, 소년의 아버지의 가슴에서 핏물이 솟구친다. 뒤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마커스가 총을 들고 있었다. 시체는 둘로 늘었고 본은 사실대로 말하자고 횡설수설한다. 마커스는 시체를 은닉하기로 한다.


다시 돌아온  마을, 멀쩡한 척할 수가 없다. 동공이 풀려 있고 추위에도 안면에 땀이 서린다. 동네 유지의 아들과 손자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둘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짙어진다. 지금 도망가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에, 둘은 협조하는 척하며 정황을 살핀다. 매립한 시체가 발견되고 둘은 어둠을 뚫고 도망친다. 사냥개가 미친 듯이 달려든다. 본이 잡히고 모든 것을 자백한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 달려든다. 호의는 살의로 돌변하고 어떤 사과도 받아들여질 리 없다. 살인이 일어났고 은폐하려 했으며 도망가려다 잡혔다. 둘을 죽인다고 죽은 소년과 아버지가 살아 돌아올 리 없지만. 역사는 늘 누군가를 희생시켜 죗값을 달게 물도록 했다. 날 선 분노가 밤을 밝힌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도 경찰의 수사대상이 되길 원하지 않고 또 다른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가길 원하지 않는다. 이상한 협상이 시작된다.


본의 손에 다시 쥐어진 총. 네 친구를 쏴 죽이면 너라도 살려 보내주마. 하지 않겠다면 분노한 자에게 둘 다 죽을 것이다. 피와 땀에 젖은 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집단 살육을 막으려는 제안자가 다시 속삭인다. 너에겐 아내와 아기가 있잖아. 뒤에는 언제라도 둘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사형집행자가 대기하고 있다. 본의 눈빛이 제자리를 찾는다. 마치 이성이 돌아온 듯, 어떤 결단을 내린 듯, 총구가 들어 올려지고 사슴을 겨눴을 때와 다른 명징한 집중력이 주위를 애워싼다. 다시 총성이 울리고 피의 거래는 완료된다. 아무 일도 없었다. 남은 자들은 그렇게 협의한다. 이곳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영문을 알리 없는, 임신한 본의 아내가 본을 데리러 온다. 피로 물든 숲을 품은 대지의 사이를 지나 돌아간다. 둘이 떠나 셋이 죽고 셋이 돌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전, 나를 모르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