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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09. 2018

러브리스, 임신 결혼 '실종' 이혼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 러브리스

임신해서 결혼했다. 사랑 감정은 없었다. 애가 태어났고 12년을 부부로 살았다.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둘이 낳은 소년은 12. 살던 집을 내놨다. 여전히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았다.   어서  시기가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소년은 둘의 고성을 들으며 일그러진 얼굴로 어둠 속에서 울고 있었다. 내가 없었다면 엄마 아빠가 싸울 일이 없었겠지. 내가 사라지면 둘의 고통도 함께 사라지겠지. 나는 둘의 불행의 근원이겠지. 나는  태어났을까. 나는  존재해서 이렇게 사람들을 싸우고 비참하게 만들까. 소년의 억측만이 아니었다.  남녀는 실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가 자신들의 생을 망쳤다고.


이런 서로의 진심은 각자의 파트너에게만 털어놓았다. 아이의 귀가 여부도 모른 채 각자의 파트너와 쾌락에 빠져 있었다. 아이가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도 없다는 걸 안 건 며칠 뒤였다. 차라리 잘된 건가. 그래도 찾아야 했다. 부모 주변 모든 어른이 동원되어 아이의 행방을 찾아 헤맨다. 거대한 숲 속, 학교 친구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병원, SNS를 통해 알게 된 무명의 폐허 공간, 연을 끊은 부모의 집까지. 없다. 시체가 발견되었다길래 가본 곳엔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있었다. 아이가 아니길 바라야 했다. 아니 차라리 아이이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울음을 터뜨리고 남자는 주저앉는다.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둘은 이혼하고 각자의 파트너에게 돌아간다. 아이는 수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제냐(마리아나 스비파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의 삶은 계속된다. 그들은 더 이상 알리오샤(마트베이 노비코프)를 찾지 않는다.


결함 없는 삶은 없다. 하지만 결함의 탓이 타인이 되는 순간, 다수의 삶은 아수라장이 된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부모들 사이에서 알리오샤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목적지도 확실하지 않은 삶에서 출발지조차 부모의 원망으로 점철된다. 알리오샤에겐 죽음보다 다급한 도피가 필요했다. 방향을 정하지 않아도 떠나야 했다.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 비참해지지 않았어 라고 모든 에너지를 다해 온몸으로 윽박지르는 어른들 사이에서 알리오샤는 견딜 수 없었다. 사라져야 했다. 다시는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방식을 간구해야 했다. 그렇게 자취를 감춘다. 하늘, 나무 위, 물속 어디에도 찾을 수 없도록. 어른들은 안도했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누구 탓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렇게 다른 파트너와 낳은 아이와 놀고 커다란 집에서 러닝머신 위에 오른다. 아이의 행방을 찾는 전단지는 여전히 나무에 붙어 있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임신은 재앙이었고 결혼은 악몽이었으며 실종은 해결책이었다. 아이가 돌아온다면 갈등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둘은 아이가 돌아와 복수하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평생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작동을 멈추고 만 불행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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