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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ug 02. 2018

더 스퀘어, 공존이 불가능한 공간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더 스퀘어





더 스퀘어라는 전시를 준비 중인 스톡홀름 현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은 소매치기를 당한다. 위치 추적을 통해 용의자로 보이는 건물 내 이민자들에게 협박편지를 보낸다. 폰과 지갑은 감쪽같이 돌아온다. 인터뷰를 했던 앤(엘리자베스 모스)과 다시 마주친다. 하룻밤을 보내고 정액이 든 콘돔 때문에 난리가 난다. 앤은 버려준다고 했고 크리스티안은 자기가 처리한다고 했다. 호의가 의심되고 크리스티안은 아마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신의 정액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거라고 여긴 것 같다. 이런 의중을 알아챈 앤은 어이없어한다. 


전시 마케팅이 필요했고 두 남자가 유튜브 영상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금발 거지 소녀가 스퀘어 안으로 들어가 폭발한다는 스토리. 극도로 부정적 표현을 통한 이슈 몰이. 듣던 전시 관계자들은 당황하지만 낯선 시도를 새롭게 받아들인다. 협의와 의견 조율을 통해 진행 여부를 결정해야 했지만 크리스티안의 사적인 요청에 의해 모두 자리를 뜬다.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클라이언트들이 저러면 정말 빡친다. 갓난아기만 바구니에 누워 울고 있었다. 크리스티안은 협박 편지에 대한 사과를 요청받고 있었다. 


앤이 크리스티안을 찾아 둘의 진지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크리스티안은 외면하고 앤은 집요하다. 앤은 자기 같은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낸) 여자들이 많았냐고, 자기 이름은 알고 있냐고 묻는다. 크리스티안은 전시물이 파손되어 수습해야 했고 시간이 없었다. 이민자 소년이 크리스티안을 찾아온다. 협박 편지에 대한 사과를 강력하게 요청한다.  문 앞까지 따라오고 실랑이 중에 크리스티안은 계단 밑으로 소년을 떠민다. 부상당한 소년은 말이 없다. 자신이 심하다고 생각해 소년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소년도 소년의 가족도 모두 사라진 상태다. 


구걸하는 자들에 대한 크리스티안의 태도는 매번 달라진다. 지갑과 폰을 찾고 기분이 너무 좋았을 때는 지갑 안의 거의 모든 지폐를 가까이 있던 걸인에게 준다. 편의점 안에서 당당히 양파를 뺀 샌드위치를 요구한 걸인에게는 집어던진다. 딸들을 기다리던 중에 일이 생긴 그는 한번 도움을 거절했던 걸인에게 다시 찾아가 되려 이 무수한 쇼핑백을 잠시만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크리스티안에게 걸인이란 하층민 계급은 달리 비하의 대상은 아닌 듯 보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마 크리스티안은 짐을 지켜준 이에게 사례했을 것이다. 


일이 터진다. 유튜브에서 전화 온다. 30만 뷰를 축하드린다고. 뭐지. 크리스티안 계정으로 올라온 금발 거지 소녀 폭발 영상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SNS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자신이 승인하지 않았지만 그의 계정이었고 모든 결과는 그의 책임이었다. 그는 그런 총책임자의 위치였고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기자회견과 함께 그는 현 사태를 사과하며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해명한다. 기자들은 그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판단력을 비난한다.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의 무관심이 불러온 참사였다. 스퀘어 안에서 폭발하는 소녀와 함께 그의 사회적 지위도 같이 사라졌다. 전시회 홍보효과는? 언론의 대문짝만 하게 비난 기사와 함께 이를 대응하기 위해 종교 대화합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전시 장소가 바로 여기라고 귀결된다. 마케팅 관점에서 이보다 더한 효과는 없다. 


만찬이 열린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인사들이 황금색 공간 안에서 축사와 샴페인을 나눈다. 이벤트 같은 깜짝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행위예술의 일종. 고릴라 같은 덩치의 남성(테리 노터리)이 근육을 드러내며 테이블 사이를 휘젓는다. 모두 안에 숨는 자에게는 얌전하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반응한다고 했다. 유인원 같이 끼끼 꾸꾸 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오가고 저명한 아티스트를 자극하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 모두를 위협한다. 한 여성에게 달려들어 야만을 드러내다가 제압당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대상이 문명을 침입했을 때 유발되는 공포와 불쾌가 의도였다면 성공적인 퍼포먼스였다. 아니었다면 그냥 난장판이지 뭐. 


수많은 장면들이 스퀘어의 상징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도시 안에서 스퀘어로 디자인되지 않은 공간은 거의 없다. 하루 종일 주저앉아 구걸하는 이와 턱시도를 입고 테슬라를 모는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뉜 곳, 자신의 지위를 의식하는 백인 팀장과 무작정 웃고 같이 떠들다가 책임을 뒤집어쓸 뻔한 흑인 직원, 싸우는 자매들, 스퀘어 안에서 군무 중에 실수한 후 실망하는 소녀, 문, 편지지, 전시 공간, 전시 컨셉, 침대, 벽, 천장, 난간과 난간으로 둘러싸인 중앙, 편의점, 창문, 모두가 지나다니지만 결코 완전히 섞일 수 없는 곳. 모양이자 공간이고 전시장이자 세계 그 자체인 곳, 수평 수직적으로 철저히 나뉜 곳. 무관심과 비겁한 변명이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곳. 그럼에도 아티스트(도미닉 웨스트)와의 대담 자리에서 정신질환자 관객의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는) 끊임없는 욕설이 웅성이는 분위기 속에서도 이해해야 할 부분으로 받아들여지는 곳(가장 감명 깊은 장면이었다). 흑과 백, 선과 악, 의도와 결과를 명확하게 단정할 수 없는 곳. 예술은 일상을 컨트롤할 수 없다. 동력과 영감을 부여한다지만 다 헛소리 같다. 영화는 끊임없이 벌어지는 크고 작은 헛소동을 통해 예술계의 허상과 궁색한 인간, 의외성과 고루함을 전시한다. 의미가 무슨 소용인가.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포장하기 위해 아주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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