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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ug 27. 2018

디트로이트, 흑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디트로이트






예쁜 여자들이 우월한(!) 백인 남자인 나(잭 레이너)를 안 만나주고 하등한(?) 흑인 새끼들과 한방에 어울리고 있어서 억눌린 질투가 폭발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장에서 목화나 따던 것들이 사람 흉내 내며 도시 이곳저곳을 휘젓고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세력을 과시하고 시시덕거리고, 우리 백인 경찰은 그들 뒤를 따라다니며 사회 질서 교란을 막으려 급급하다.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얼마나 차별당한다고 저 난리들인 거야. 너네 조상들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지. 거리에서 너희를 마주칠 때마다 당장 쏴 죽이지 않는 것으로도 이마를 땅에 찧어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감히 여기저기 총을 쏘고 불을 지르고 건물을 부수고 물건을 훔치며 나라를 전쟁통 같은 비상사태에 빠뜨리고 선량한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해? 너희는 모조리 조져 범인을 색출하기 전까지 단 한 발자국도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 너희 깜둥이 새끼들이 설치는 걸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거다. 내 총에서 몇 번의 불꽃이 터지는지 한번 확인해보시지.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벽을 바라봐라. 너희 중 누군가 미합중국 경찰과 군인을 향해 총을 쐈고 우리는 너희 모두를 죽여서라도 범인을 잡을 것이다.


흑인을 멸시하는 백인의 명분이란 치졸하기 그지없다.


분노가 문을 부수고 윽박으로 공기를 깨며 총구를 들이밀며 위협하고 있지만 그 이유란 '어떻게 노예들이 내 파트너를 가로챌 수가 있지?' 같은 망상에서 비롯된 허황된 박탈감과 질시, 이성이 이탈한 판단력일 뿐이다. 말보다 격발이 앞서는 백인 경찰 필립(윌 폴터)은 저격수 용의자를 찾던 중 20대 흑인을 사살한다. 그에게 모든 흑인은 세상 모든 범죄의 잠재적 용의자였고, 즉결 응징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와 무리들은 총성이 울린 모텔을 점거하고 투숙하던 모든 흑인 남자들과 또래 백인 여자를 모조리 줄 세워 겁박한다. 죽음이 바로 귓가에 있었다. 총구는 달궈져 있었고 시체는 식어가고 있었으며 용의자는 오리무중이었다. 애초 잘못된 방향, 범인은 처음부터 없었고 자세한 정보 없이 무작정 범인으로 단정한 게 화근이었다. 그 사이 터지는 비참한 질투, 왜 예쁜 백인 여자가 까만 흑인 남자와 어울리고 있냐는 열등감의 폭발, 전략은 틀어지고 겁박을 넘어 연이은 살인이 발생한다. 백인 경찰이 흑인 청년을 죽인다. 눈 앞에서 총을 겨누고 맨 손의 상대방을 시체로 만든다. 살인은 계속된다.


불길과 범죄, 긴장과 차별로 타오르던 1967년 디트로이트, 이 동네에서 제일 쉬운 일은 흑인이 범인 되는 것과 백인이 무죄 판결받는 일이었다. 일방적인 대응으로 죽은 흑인 시체 옆에 주머니 칼을 두어 정당방위를 꾸민 백인 경찰 무리는 이후 대량 살육이 일어난 모텔에서의 일을 추궁당하지만 모두 유유히 법정을 빠져나간다. 흑인 유족들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비슷한 일들은 50년이 지난 요즘도 빈번이 발생하는 중이다. 혐오. 증오. 분노. 권력. 차별. 폭압. 학살. 위장. 탈출. 반복. 차별의 역사는 미래의 차별을 변호한다. 이렇게 당해왔으니 이유가 있을 테고 지금 당하는 것 또한 납득의 여지가 있을 거라고 합리화된다. 개인이 아닌, 집단, 민족, 피부색,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장작 삼아 차별은 끊임없이 재앙의 불씨가 되고 반드시 화마로 인한 피해를 남긴다.  죄 없이 감옥에 가고, 이유 없이 피투성이가 되며, 끌려가 집단 구타를 당하고, 목이 매달리기도 한다. 한 명 한 명의 죽음이 쌓여 만인의 영원한 분노가 된다. 흑인 대통령이 8년 동안이나 통치했던 미국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랫동안 대물림되는 증오 범죄를 막을 힘이 시스템에게 있을까. 개인과 개인이 마주 서 있을 때 판단은 충동적으로 일어나고 시스템이 개입하기엔 너무 촉박하다. 백인 공권력은 비이성적인 판단과 행동과 결과를 최선과 합리로 포장하는데 능숙하다. 어떤 흑인 피해자는 죽었고, 어떤 흑인 피해자는 영영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후손들은 여전히 백인 사회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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