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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14. 2018

목격자, 아파트 시세 하락의 주범

조규장 감독. 목격자







간밤에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서 사람이 죽었다. 여자가 망치로 머리를 맞았고 두 시간을 살아있었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범인은 다시 돌아와 확인 살인을 했다. 다음날 아침, 화단과 보도블록이 피로 물들고 폴리스 라인과 경찰, 주민들로 현장 주변은 난리다. 목격자를 수소문하지만 좀처럼 찾기 힘들다. 불 켜진 세대가 있었고 목격이 가능한 지점이지만 목격자는 없다. 있어도 없다. 없어야 한다. 나는 목격자가 아니어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범인이 날 봤고 내가 범행을 봤으며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형사들이 범인 검거를 위해 수사 협조를 구한다. 범행 당시 근처에 누가 있었고 뭘 하고 있었으며 어렴풋이라도 본 건 뭐가 있는지 찾는다. 남의 일, 모르는 사람의 죽음, 반응은 냉랭하다. 세대마다 종이가 한 장씩 붙는다. 수사 협조 거부 요청서. 아파트 시세가 떨어질지 모르니 어차피 시간 지나면 잊히고 묻힐 일, 시끄럽게 떠들어 뉴스에 오르내리지 말라는 소리.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아파트값이 먼저다. 대출 껴서 마련한 우리 집, 집값 떨어지면 책임 질건가? 누가? 경찰이? 범인이? 당신이? 상훈(이성민)은 목격자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족과 집, 빚이 날아갈까 겁이 났다. 한 번에 모두 잃을까 미칠 것만 같았다. 범인은 주시하고 있었다. 목격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실종자가 발생한다. 주민들은 외면한다. 남편(김성균)이 개차반이니 집을 나갔겠지, 뭐 어떻게 되었겠어? 안 그래도 어수선한데 사람 찾아달라는 이 전단지는 또 뭐야. 아파트 다 망하게 할 셈이야? 빨리 다 안 갖다 버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붙인 실종자 전단지가 바닥에 흩뿌려진다. 몰래 떼내어진다. 아파트값이 먼저다. 다들 힘 합쳐 수천만 원 수억 원 올려야 신나는데 재수 없게 살인사건이 터지지 않나 사람 없어졌다고 전단지를 붙이지 않나. 도대체가 살 수가 없다. 실종자는 죽었다. 살인자가 목격자를 찾았고 목격자는 동일범에게 살해당했다. 상훈은 모두 알고 있었다. 애초 자신이 목격 여부를 밝히고 협조했다면 적어도 추가 살인은 없었을 거라고,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되려 번지고 있었다. 뒤늦게 협조하지만 범인은 단숨에 잡히지 않았다. 범인은 다시 목격자를 죽이러 접근하고 있었다. 


상훈과 가족은 결국 이사를 결정한다. 부녀회장(황영희)이 묻는다. 집은 얼마에 내놨어요? 설마 4억 밑은 아니죠? 얼마나 놀랐냐고, 몸은 괜찮냐고, 아이는 괜찮냐고, 물을 생각도 없어 보인다. 살인 사건 목격하고 이 아파트 떠나면서 설마 시세까지 깎아먹고 도망치는 건 아니지?라고 묻는 것 같다. 살인보다, 실종보다, 사람 목숨보다 아파트 시세가 먼저다. 아마 아파트 시세만 올라간다면 몇 목숨이 더 날아가도 잔치를 벌일 거다. 과장? 풍자? 절대 아니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신도시, 또는 지금도 뉴스에 오르내리는 셀 수 없는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모두 쉬쉬하며 피를 닦고 모두 힘을 합쳐 파이를 키운다. 모든 아파트엔 피가 서려 있다. 누군가 죽었고 몰래 피를 닦았으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집값 떨어지느니 사람 모가지 떨어지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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