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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20. 2018

공작, 전쟁쇼의 기획자들

윤종빈 감독. 공작






'충격과 공포'는 검증된 전략이다. 변두리 깡패들도 돈을 뺏기 위해 칼을 꺼내 손바닥을 긋거나 담뱃불로 혓바닥을 지지며 충격과 공포를 조성한다.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너도 같은 꼴이 되고 싶지 않으면 원하는 걸 달라고 겁박한다. 모두에게 통하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대다수에게 통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가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군의 포격은 전쟁 발발의 엄청난 공포감을 안긴다. 본능적으로 모험보다 기존의 지식과 주입된 정보, 안전하고 선을 넘지 않는 선택으로 몸과 마음이 기운다. 이성이 제정신을 다잡으려 하지만 생존본능과 보호본능은 날고 거친 방식으로 작동한다. 만민의 선택으로 단 한 사람을 선정하는 선거철, 판단은 조작되고 있었다.


1990년대 초, 휴전선 앞에서 남쪽으로 불을 뿜고 있는 북한군을 보며 빨갱이를 한민족으로 여기는 유권자는 많지 않았다. 김대중은 다시 패배했고 보수 여당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하필 남한의 중요 선거를 목전에 둔 때에 북한은 도발했나. 남한의 정치세력이 의뢰했고 입금했으며 북한은 받아들였고 실행했다. 남북한 합작쇼였고 휴전선은 더욱 견고해졌으며 남한의 집권세력은 내려오지 않았다. 코미디. 분단된 양국의 집권세력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하나로 뭉쳤으며 쇼가 끝나면 다시 긴장을 유지했다. 고통받는 건 전쟁쇼를 기획한 자들을 제외한 모두였다. 가장 꼭대기에 선 자들이 합세하여 나머지 모두의 목에 밧줄을 걸고 끌고 다니고 있었다.


애국이라는 허상, 정말 개인이 절대다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믿고 싶은 거 아닐까. 조국이라는 거대한 준거집단의 존립과 구성원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개인을 기꺼이 버리고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걸까. 자아의 내면에 조국이 구체화되고 끝내 자아의 거대한 일부가 되어 조국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고 끝내 개인의 산화를 통해 조국의 평화를 유지히려는 시도, 이를 직업으로 삼은 자들. 스파이. 스파이들에게 조국은 무엇보다 생계를 책임지는 직장이었고 절대 기준이자 가치 었으며 작은 오차로도 불길에 휩싸일 수 있는 화약고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혼란스러웠다. 명령과 국익 사이, 결정은 결국 스파이 개인의 몫이었다.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최종 결정은 스파이에게 넘어왔다. 명령을 어기면 제거될 것이다. 하지만 명령을 수행하면 국가(와 국민)가 망할 것이다. 흑금성(황정민)은 패를 던진다. 김정일 앞에서 국운을 베팅한다. 


조직의 관점으로 볼 때 안기부에 소속된 흑금성은 (고의적으로) 임무에 실패했다. 그 결과 안기부 수장들은 훗날 구속되고 그들과 결탁했던 북한의 관계자들 역시 아오지로 끌려간다. 집권을 연장하려던 정치세력에겐 뼈아픈 결과다. 판이 뒤집혔고 마침내 (그리도 반대했던) 김대중이 집권했으니까. 흑금성과 안기부, 집권세력이 각각 보여주는 애국심은 달랐다. 다들 국민과 국가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지만, 개인의 신념, 조직의 안위, 집권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가장 순수하고도 실체와 가깝지 않은 불안하고도 까마득한 쪽은 흑금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공작의 가장 날 선 자리에 있는 자신의 이점을 잘 알고 있었고 북측 핵심 권력(이성민)과의 의리까지 최대한 끌어모아 전쟁쇼를 저지한다. 조직을 배반하고 국가를 전쟁 위기에서 구원한다. 결과적으로 옳았다. 나비효과처럼, 우리는 며칠 전부터 김정일의 아들과 김대중과 노무현을 잇는 새로운 대통령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평화와 통일을 논의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까. <2018년 9월 19일, 남북한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 합의서 채택>, 흑금성이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한반도 평화는 이제 허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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