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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Nov 06. 2018

죄 많은 소녀, 자살의 가해자들

김의석 감독. 죄 많은 소녀





경민이 사라진다. 영희는 가해자로 몰린다. 죽기 몇 시간 전까지 같이 있었다.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경민의 부모가 자살 추정 현장에 도착하고 경찰은 같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관련 진술을 수집한다. 수사를 지휘하는 김형사(유재명)는 영희을 다독이며 그날의 일을 묻는다. 너와 경민이 뽀뽀하는 게 CCTV에 잡혔다고. 영희의 진술과 그날 같이 있었던 한솔(고원희)의 진술은 조금 달랐다. 그 미묘한 차이가 영희가 경민을 적극적으로 죽게 만든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자살 가해자로 몰린 영희(전여빈)는 반 아이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다. 경민(전소니)의 시체가 발견되고 장례식이 치러진다. 죽은 자와 죽은 자의 가족과 죽은 자의 반 아이들과 죽은 자의 혼을 부르는 자가 뒤엉켜 좁은 공간은 아수라장처럼 느껴졌다. 진술의 일부를 수정하고 싶어 하는 영희의 요청은 담임(서현우)에 의해 묵살되고 영희는 음독자살을 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온몸 마디마디를 꺾고 피를 토한다. 병원에 실려가지만 목소리를 잃는다. 구멍을 뚫고 숨을 쉬고 호스를 꼽고 영양분을 섭취한다. 영희는 살았지만 부활한 게 아니었다. 경민의 사망보험금으로 영희를 수술시켰다. 앞서 죽은 자가 남은 자들을 살리고 있었다.

경민 엄마(서영화)의 결정이었다. 복수이자 기회였다. 경민 엄마는 자신들의 무관심이 경민의 자살 원인으로 일부 작용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완강히 저항했다. 그 저항은 강한 인정으로 읽혔다. 영희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싶었지만 가능할 리 없었다. 한 사람이 죽었고 주변의 모든 세계가 연이어 사멸하고 있었다. 가장 사랑했던 이들이 가장 고통받고 있었다. 오해는 일부 풀린듯 보였지만 영희의 죽음은 끝나지 않았다. 영희는 자신보다 먼저 죽은 경민을 원망했고 실패한 죽음을 완성하러 반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다. 자신을 오해하고 때리고 칼로 긋고 욕을 퍼부은 무리들 앞에서 영희는 자신의 계획을 침묵으로 전달한다.

죽음과 폭력의 작동 방식. 사건(자살)이 일어나자 무리들은 가해자를 찾는다. 복수가 아닌 화풀이의 대상으로. 한 죽음으로 주변 다수의 삶이 번거로워졌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어른들은 정치적으로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오해를 근거로 무참히 칼을 휘두르고 질서 유지를 위해 윽박지른다. 추모는 없고 산 자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혐의를 쏟아부을 어린양을 찾는다. 하지만 영희는 어린양이 아니었다. 먼저 죽지 못해 눈물 흘리는 늑대였고 세상의 모든 소음을 뒤로한 채 자신만의 계획을 완성하러 뚜벅뚜벅 걸어간다.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는 최후의 죽음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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