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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29. 2021

스토어웨이, 나 대신 죽을 사람은 누구인가

조 페나 감독. 스토어웨이



지구의 미래는 화성에 있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훈련을 마친 조(안나 켄드릭)와 데이비드(대니얼 대 김)는 베테랑 리더 마리나(토니 콜레트)와 함께 킹피셔를 타고 무한의 우주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우주라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계 안에서 개척 임무를 실현시키기 위해 생존과 임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만 담은 우주선, 더구나 2인용을 확장해 3인에 겨우 맞게 개조한 버전이었다. 비용 최소화 수익 최대화라는 룰을 절대 깨지 않는 대기업의 작품. 하지만 여기에 인류의 미래를 걸어서 대안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가야 했다. 그리고 이 모험에 많이들 지원했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긴다. 우주 대폭발이 아닌, 선내 인구 증가. 승선인은 세 명이 아니었다.


닫혀 있던 천장에서 마이클이 피투성이가 되어 떨어진다. 건장한 체격의 엔지니어 마이클(셰미어 앤더슨) 합류, 감독은 그의 등장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희망과 두려움이 안겨 있던 우주선 킹피셔는 순식간에 미스터리와 공포로 숨통을 조이는 밀항선이 된다. 마이클의 등장은 동료 한 명 더 늘어난 게 아니었다. 그는 훈련을 받지 않은 자였고 계획에 필요한 전문지식이 전무했으며 모두와 같이 먹고 마시고 자고 숨 쉬어야 했다. 무엇보다 그의 등장은 우주선 내부의 파손을 가져왔고 산소 공급이 위태로워진다. 공기가 유한한 공간, 한 명의 숨은 한 명의 목숨이었고, 한 명이 추가된 건 남은 모두의 산소를 앗아간다는 것이었다. 산소 공급 장치가 고장 나자 말 그대로 우주선 내부는 패닉 상태가 된다. 산소는 3인분, 인원은 4인. 지구와 다른 룰을 적용해야 했다. 목숨의 경중을 따져야 했다. 허락받지 못한 자 마이클이 사라져야 했다. 그래야 원래 승선했던 자들이 살고 화성 이주 계획도 진행할 수 있었다. 여기가 망망대해 보트였다면 누군가 벌써 마이클을 상어밥으로 밀었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그럴 수 없었다. 지구에 가족이 있는 건 마이클뿐이 아니었다. 마이클은 죽음을 권유받는다.


영화는 생존과 죽음 사이의 고뇌를 포장하는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그게 전부일 수도 있었겠지만 무리 사이의 압박과 갈등을 절제한다. 킹피셔 안에는 악인이 없었다. 어쩔  없는 상황만 놓여 있을 . 조가 나선다. 가장 밝고 희망차며 유머를 잃지 않던 긍정의 캐릭터. 조가 마이클의 죽음을 빼앗는다. 처음부터 우주는 자기를 선택한 세계가 아니라고 여겼을까.  모든  운이었고 운의 수명은 여기까지 였다고 여긴 걸까. 조의 인류애는 무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드시 해내야 했던 산소 수급 임무마저 코로나(태양 대기층의 가장 바깥쪽) 사태로 실패한다. 최선을 다해 지원했고 최선을 다해 훈련을 받았고 최선을 다해 우주선에 올라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상 어떤 최선도 통하지 않는 상황. 지구에서 조금은 통했던 노력 대비 결과의 정비례 공식이 우주에서는 폐기 대상이었다.    둘이 죽을 수도 있었다. 둘이 둘을 죽이지 않아도 산소 부족이 둘의 호흡을 멈추게  수순이었다.


*스포일러


선내는 암흑이었다. 모두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성별과 인종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만, 조가 나선다. 조는 최후의 빛이 되기로 한다. 최후의 빛이 되어 남은 자들에게 산소를 건네주고 자신은 방사능과 함께 우주의 이름 없는 운석이 되기로 한다. 나는 여전히 마이클이 왜 우주선에 탔는지 모르겠다. '허가받지 않은, 왜 명분이 타당하지 않은 흑인 남성의 승선 때문에 모두가 위험에 빠지고 결국 백인 여성이 모든 책임을 끌어안아야 했나'라는 관점으로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에서 그렇듯, 우주에서도 역시 삶의 여정은 공평하지 않다는 건가. (에이리언: 커버넌트 같은) 좀 더 어두운 결말을 원했나 보다. 희생은 숭고하지만 막연한 희생은 희망에 대한 기대를 흐릿하게 만든다. 화성에는 마리나만 도착할지도 모른다. 머나먼 여정이 남은 킹피셔에겐 겨우 최초의 위기만 지나간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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