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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y 04. 2021

나의 첫 번째 슈퍼 스타, 꿈이 직업이 되었을 때

니샤 가나트리 감독. 나의 첫 번째 슈퍼 스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의 일정한 시기가 오면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해야 한다.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때까지 일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대부분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에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도 한다. 타고난 재능이 평생의 수입을 가져다주면 얼마나 좋을까. 상업적으로 성공한 예술가에 대한 관점이 흔히 이렇다. 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태어날 때부터 잘해서 저렇게 자유롭게 행복하게 넘치는 돈을 버는구나. 얼마나 좋을까. 난 왜 이럴까. 자신과 롤모델을 양극단에 두게 된다. 쉽게, 아니 절대 좁혀질 수 없는 간극, 생각만 했는데도 피로가 몰린다. 그 사이는 어떨까. 꿈과 성공 사이. 아니 꿈과 직업 사이. 극소수가 누리는 성공의 샴페인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행복한가.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충분히 부유한가. 그건 또 아니다. 그래서 그 일이 지속 가능한가. 모르겠다. 그럼 꿈꾸지 않았던 일을 어쩌다 선택해서 적당한 부와 명예를 얻는 건 어떤가.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다. 꿈꾸던 일을 직업을 삼게 된 사람들의 면모를 다 수집해 평준화하긴 어렵겠지만, 기대만큼 환상적이진 않다. 하지만 또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입장이 하나로 좁혀지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건 매기(다코타 존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미를 셀 수 없이 휩쓴 슈퍼스타의 스케줄 매니저. 슈퍼스타 그레이스(트레시 엘리스 로스)를 아주 어릴 적부터 동경해왔고 성인이 된 후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꿈을 꾸고 있다. 슈퍼스타의 음반을 프로듀싱하는 것. 꿈이 직업이 된 매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음 꿈을 꾸고 있어서 견딜 수 있다.


영화를 떠올리며 적다 보니 어쩌면 꿈을 실현화시키는 단계나 결과보다 꿈을 꾸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지수는 높은  아닌가 싶다. 다수의 스텝의 생계를 신경 써야 하는 막중한 책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거나 정상에 올라 견뎌야 하는 불안과 초조함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은 없다. 부와 명성에 취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왕좌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슈퍼 스타의 곁에서 오랫동안 있다 보면 슈퍼 기회가 자주 닥칠  같지만, 슈퍼 스타는 자기 앞길 외에 모두가 귀찮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당신 광팬이에요 ㅋㅋ" 정도의 취급이나 받느라 스트레스받는데 자꾸 자기  음반을 제작하려고 하는 스케줄 매니저가 같잖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스트가 펑크  행사장에서 그레이스는 매기에게 경고한다.  미래를 위해  이용할 생각 말라고.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사이에 거대한 벼랑을 만드는 잔혹한 사다리 차기였다. 매기는 어린 시절이 남아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극적 반전이 매기를 다시 정상 궤도에 안착시키지만, 너무 극적이라 대리만족의 쾌감이 덜하다. 동네 마트에서 과일 고르다 우연히 작업 건 남자가 잘 생기고 노래를 잘하는 부유한 청년(켈빈 해리슨 주니어)인데 거기에 전설적인 셀럽의 핏줄이라는 설정은 여운의 꼬리를 싹둑 자른다. 인연은 로또일 수 있고 매일 밤 잠을 줄이며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은 자에게 기회는 올 수 있지만 저런 건 날벼락에 가깝다. 인상적인 건 과정보다 매기에게서 자신이 이 분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드러날 때였다. 완전히 매료된 자는 관련 정보와 자신의 지식이 연결될 때의 희열을 감추지 못한다. 좋아하는 뮤지션과 트랙을 열거하고 관련 역사와 연대기, 주변 인물과 숨겨진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꼬리를 문다. 이런 취향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뛸 듯이 반갑고 코드가 어느 정도 겹치면 달뜬 표정을 도저히 숨길 수 없다. 매기에게서 그게 보이고 느껴졌다. 거절과 멸시, 조롱과 문전박대를 당해도 끝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로 넘치는 모습들. 한국이었다면 찬실 피디처럼 산동네로 가서 윤여정 할머니와 콩나물을 다듬으며 살았을지도 모른다.(feat. 찬실이는 복도 많지) 하지만 미국 음악 영화니까, 매기는 기어이 아메리칸드림의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도착하고 만다. 꿈의 실현을 통해 누군가의 새로운 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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