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Jun 18. 2021

침입자, 여성들에게 유해한 남자에 대하여

손원평 감독. 침입자

하늘이 가족 하나를 데려가시니까

다른 가족 하나를 돌려주신 것 같다




대체 불가한 것들로 채워져야 인간의 삶은 존재 명분과 추동력을 갖춘다. 서진(김무열)에겐 없었다. 아내가 죽었다. 뺑소니 범인을 수소문하지만 진척이 없다. 서진의 삶은 나날이 붕괴된다. 균열은 메꿔지지 않는다. 딸아이조차 아내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대체 불가. 서진이 그토록 연인을 향한 사랑에 애달픈 자였나. 적어도 아이에겐 그렇지 않다. 홀로 온몸을 짓누르는 괴로움의 압박에 휩싸여 실신 직전까지 자주 이른다. 최면 치료를 통해 뺑소니범을 찾으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범인을 찾고 싶은 다급함이 서진의 태도에서 매너를 지운다. 서진 곁에서 사라진 사람은 아내뿐이 아니다.


서진의 여동생은 어릴 적 서진의 부주의로 공원에서 실종된 후 찾지 못했다. 서진의 엄마(예수정)는 충격으로 평생 휠체어에 앉아야 했다. 산지 죽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어린 서진의 부주의는 부모의 방관으로 알려졌지만 당사자는 원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의 죽음까지. 서진이 교회를 다녔다면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여동생, 아내, 엄마까지 가장 가까운 여성들이 죽거나 영영 사라지거나 불구에 가까운 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서진은 여성들의 삶에 유해한 자인가. 그는 이 혐의를 벗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타난 여성이 내가 니 여동생이라고 주장한다. 어림잡아도 여동생 실종된 지 30년도 더 지났는데. 이런 사람이 처음이 아니라 서진은 유진(송지효)을 경계한다. 하지만 유진은 결국 서진보다 더 깊숙이 서진의 가족의 틈에 침투한다. 부모와 서진의 딸(박민하)을 포섭하고 자기 사람들을 집으로 들인다. 유진을 의심하거나 쫓던 사람들은 죽거나 사라졌다. 서진은 유진이 반갑지 않았다. 의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유진은 서진의 딸을 노린다. 마지막 남은 서진의 대체 불가 대상. 딸마저 피해를 입는다면 서진을 둘러싼 모든 여성이 파멸의 결말을 맞는 셈이었다. 서진은 막고 싶었다. 하지만 서진은 그렇게 강한 사람도 딸을 아끼는 자도 아니었다. 서진은 그저 자신이 최악의 인간이 되는 걸 막고 싶었을 뿐이었다. 불행의 도미노를 설계한 자들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서진의 목적은 그런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 곁에 남은 자들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진은 힘이 없었다. 서진의 딸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던 기억을 평생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아빠 서진과의 사이에 깊은 어둠과 침묵을 형성할 것이다. 서진은 일에 빠져 주변을 돌보지 않았고 영영 고통받고 있었다. 아마 쏘우 시리즈였다면 진작에 '게임'을 당했을 것이다. 서진이 묶인 의자 옆에는 서진의 아비(최상훈)가 같이 묶여 있을 것이다.







이전 16화 새콤달콤, 대기업 남친이 바람피우는 것 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