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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n 11. 2021

새콤달콤, 대기업 남친이 바람피우는 것 같다

이계벽 감독. 새콤달콤



나 만나는 게 피곤해?



대기업 남친이 동료와 바람피우는 것 같다. "우리 이쁜 보영이"라니. 내 볼을 만지며 처음 듣는 여자 이름을 부르다니. X나 어이없네 씨X 개X끼가...  중소기업 다니다 대기업 파견 나가더니 얼굴 보기 힘들어졌다. 인천과 서울은 천국과 지옥처럼 멀다. 장혁(장기용)은 첫 출근 때 왜 운전하다가 도로 위에서 머리를 감고 저 난리래..라고 비웃다가 몇 달 후 같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여자 친구 나은(채수빈)의 집은 인천, 거의 동거 수준으로 일주일에 몇 번씩 오갔는데 서울 파견 나가니 힘들어졌다. 힘든 이유는 뻔하다. 긴 출퇴근, 새 회사 적응, 연속되는 야근. 여기에 네이트 판 사연에 등장할 것 같은 변수가 발생한다. 또 다른 파견 직원, 정직원 자리를 다투는 경쟁자, 보영(크리스탈). 피곤하다. 신분상승의 기회가 온 건 맞긴 한데 장혁은 진짜... 피곤해졌다.


나은은 그렇다고 노나. 나은은 3교대 병원 근무 간호사다. 피곤하다. 야간 설 때는 잠 깨려고 계단 통로에서 담배를 피운다. 시시각각 쓰러질 거 같다. 귀가 후 집에서 남친 장혁과 저녁 시간을 보낼 때는 그나마 낫지만... 대기업 파견 나간 후 마주할 시간이 완전 줄었다. 같이 제주 여행 갈 때 그렇게 좋았는데. 지금은 서로가 낮의 피로에 휩싸여 밤의 에너지를 잃었다. 대화할 기운도 없고 분리수거도 전구 갈기도 귀찮다. 일상이 무너진다. 유일하게 기댈 곳은 남친 하나였는데... 어느 날 생리가 멈췄다. 검사 결과는 임신 초기. 낙태는 연애의 클리셰가 된 걸까. 남친은 한숨만 쉬고 다정하게 굴지만 일 많다고 다시 나간다. 혼자 울었다. 불쌍한 우리 아기. (남친이 적극적으로 동의했다면 우린 부모가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장혁도 편할리 없지만 회사로 도망치니까 좀 낫다. 긴박한 프로젝트로 보영과 야근야근야근 하다가 키스와 원나잇까지 갔다. 난 괜찮은데 자꾸 누가 분위기를 만들어주네... 경비원 이경영 판타지를 만들어 바람피우는 걸 합리화하려고 발악한다. 투박하게 정리하면 여자 친구 낙태 유도하고 회사 동료와 바람피우는 놈이다. 그래, 끝이 보인다. 피곤해 피곤해 피곤하다며 다은의 시그널을 계속 무시한다. 짜증이 늘어난다. 장거리 연애, 야근, 임신, 바람, 짜증, 싸움, 어설픈 사과... 이런 패턴은 장혁과 나은 만의 케이스가 아니다. 모두가 알고 예상하지만 직접 마주하는 순간 기대와 다른 선택으로 대부분 폭파되는 수순이다.


극적이지 않아서  가까운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현남친 전남친을 꼬아놓은  어차피 누굴 사귀어도 그놈이  그놈이라는 건지, 남자는 얼굴값보다는 헌신과 나만 생각해주는 순정이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배우로 바뀌었을  현실의 어떤 이성 커플도  영화가 쳐놓은 연애의 디테일한 범주 안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다만 환자에게 오빠라는 호칭이나 여성 간호사를 향한 남성 판타지는 불편했다.  전체를 위한  정도 곁가지는 괜찮다고 여겼겠지. 그런데  곁가지 때문에  전체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기도 한다. 어떤 숲은 저런 곁가지를 정성스럽게 챙기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런 숲을 형성한 영화들이  오랜 생명력과 동시대성을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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