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혐오에 대하여

by 백승권






혐오할 수 있는 대상을 혐오한다. 다수결로 정하지 않는다. 아마 휩쓸렸다면 내 오랜 혐오의 대상들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종종 무리의 다양한 의견이 참고되긴 하지만 혐오 여부의 결정과 대상은 철저히 '스스로' 정한다. '스스로', 이 말이 얼마나 웃기는지 곱씹는 중이다. 체계적인 절차의 집단 토론을 통해 정하지 않는다 정도의 의미다. 혐오는 감정 소모와 물리적 환경적 피해를 통해 정해지고 무엇보다, 나를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생성된다. *혐오를 위한 혐오가 아닌 어쩌면 생존과 호흡을 위한 혐오이기도 했다. (*다시 보니 이 문장은 변명처럼 들린다. 때론 혐오를 위한 혐오를 했을 것이다. 번외의 이야기지만 혐오는 너무 소모적이다.)

내가 감지하고 직간접 적으로 경험한 혐오에 대해서만 말하고 쓸 수 있다. 내게 혐오란 화상 같은 거라서 부정한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다. 고통과 상처의 반작용, 오래 누적되어 흉터가 된 기억들에 대한 대응이다. 여전히 기억의 일부를 썩게 하고 당시의 시간들을 망가뜨린 대상들에 대한 꾸준한 형벌이다. 도저히 잊히지 않는 사건과 그때의 언어폭력, 겁박, 인격모독, 정신적 피해에 대한 디톡스다. 혐오는 어쩔 수 없이 재생되는 이런 것들에 대한 폭력적 자학적 반응이다.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한다지만 내 혐오의 대상들에겐 소용없었다.

개인적 혐오는 나, 개인이 여생 동안 가져가야 할 부분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혐오에 대해 생각한다. 불가피하게 소속된 집단의 테두리 안에 숨어 가했던 폭력을 세어본다. 말과 행동의 세기와 거리, 함께 있었고 듣고 있었고 받아들여야 했던 가까운 타인들에 대해 헤아려 본다. 그들이 내게 말하지 못한 혹여 말할 수 없던 내용 중 내게 고쳐지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없었는지 떠올려 본다. 조심하고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해본다. 습관으로 만들고 태도의 일부로 기본 모드로 만든다. 그리고 계속 업데이트한다.

내 성별이,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래서 먼저 일을 시작했다는 이유가, 이 선택 불가의 사항들이 누군가에겐 존재 자체로 위압과 침묵의 연유로 작용하진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겐 말을 걸고 대화를 이끌며 요청하고 답을 해줘야 하는 입장에서 노력해서 얻어지지 않은 것들로 보이지 않는 권력을 누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경계한다. 행여 가깝다 여기며, 또는 거리감을 지우기 위해 던진 농담이 누군가에겐 영혼 없이 웃고 거짓으로 동의하고 또는 불쾌해도 참아야 하는 유독물질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계속 생각하고 멈추지 않았다가 이렇게 써본다.

혐오의 대상을 자처하진 않았는지. 무례의 폭을 (합의가 아닌) 개인 기준으로만 가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관계의 폭이 협소해지더라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너무 쉽게 가해자 집단에 (잠재적으로라도-이게 더 위험하다)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악랄한 혐오 스피커 뒤에 숨어 팔짱 끼고 끄덕거리며 사회적 약자들을 압살 할 수 있다는 것을. 개인적인 혐오 대상에 대해 무리의 동의를 애써 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언제든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소수와 약자의 편에서 생각하고 일상에서 당면한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한다. 예를 들면, 주변 누군가의 여혐 피해에 분노하고 즉시 개선을 요구하며 구체적 대응 매뉴얼을 관련 부서에 직접 전달하는 일 같은 것. 단숨에 나아지지 않는 일이라는 점을 안다. 사회와 시스템을 바꾸려는 게 아니다. 눈앞의 풍경을 바꾸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와 나의 우리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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