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우정의 소멸

윤성현 감독. 파수꾼

by 백승권




지금까지 경험한 한국영화들 중에서 남자 고교생을 이토록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은 없었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작품 <릴리 슈슈의 모든 것 All About Lily Chou Chou> 같은 영화를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아시아든, 서방 문화권이든 영화(를 포함한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보이는 10대 남자애들은 늘 어른이 되기 전 성의 유혹과 폭력과 약물로 얼룩진 문제적 대상이었다. 보수적 한국 남성으로 변태 전, 폭력서클이나 입시지옥의 희생양, 둘 중 하나의 캐릭터만을 입어야 했다.


극단적 분노로 세상에 포효하고 상처를 드러내며 동정을 호소하며 가해와 피해를 오가는 야누스 적 존재. 지금까지의 영화가 보여준 남고생들은 꼭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표준적 또는 고정관념으로 가려진 연극적인 모습들 같았다. 상황 묘사나 드라마틱한 설정의 일부로 그들의 손엔 늘 쇠파이프, 각목, 담배, 깨진 술병 등이 들려있었던 듯하다. 물론 일그러진 영웅들이 무리 지어 서식하는 모습들이 남고의 단면이긴 하지만, 실제 현실이 그랬던가. 현실은 늘 말수가 더 적은, 표현이 더 적은 평범하고 조금 명랑한 더 모호하거나 덜 극단적인 (남자) 아이들이 더 많아 보였는데.


파수꾼은 그 부분을 잡아냄으로써 현실감을 획득하고, 또한 차별화에 성공한다. 세 친구. 여자. 갈등. 침묵. 오해. 폭력. 실연. 분노. 사과. 반복. 극단. 죽음. 파멸. 영화는 추억의 장면들을 기워내며, 관계의 생성부터 균열과 파괴의 서사를 보여준다. 그 사이를 메우는 눈빛과 짧은 대화와 성난 걸음과 방향이 빗나간 주먹들.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과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난무한다.


절제와 조율에 서툴 수밖에 없는 시절, 그들은 같이 지냈던 시절의 웃음은 온데간데 잊은 듯, 서로에게 상처 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언어로 마음의 피부를 쪼개고, 언어로 살집을 헤집고, 언어로 피를 쏟고, 언어로 울게 하고, 언어로 죽게 했다. 주먹질은 그 보다 덜 아팠겠지. 기태(이제훈),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 그들은 하지 않은 이야기와 참았어야 할 말들로 서로를 난자하고 벽을 세우고 영영 좁혀지지 않는 간격을 만들었다. 인간은 이따금 의미와 상징도 잘 알지 못하는 말들을 통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파국을 맞이한다. 우정이 소멸되는 과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킹스 스피치, 말더듬이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