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감독. 패터슨
시를 이해하는 것보다 시를 쓰는 게 더 쉬울 것 같지만.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시를 쓸 수 없게 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범접할 수 없다. 내가 감히? 시의 벽을 넘는다고? 차라리 어떻게 정신 못 차리고 쓰다 보니 이게 시의 형태와 닮아있더라가 더 말이 되기도 한다. 뱀과 실 같은 문장과 문장들이 서로의 머리와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어 토막토막 토막을 내었더니 그렇게 썼더니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길게 쓰는 게 가장 쉬운 일이고 가장 짧게 쓰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시의 세계는 달보다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인간이 달에 도착했다는 걸 진실과 거짓을 논쟁하는 세상에서, 달보다 아득하게 먼 시의 세계는 차라리 며칠 전 알려진 블랙홀의 모습보다 더 형태가 불분명하다. 나는 아마도 영영 착륙하는 법을 알지 못할 것이다.
패터슨은 시를 쓴다. 직업이 타인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가장 쉽게 활용되는 세상에서, 패터슨의 직업은 버스 운전사다. 패터슨에서 버스를 운전한다. 세계적인 시인이 자란 동네 패터슨에서 패터슨은 버스를 운전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작은 노트의 빈 곳을 펼쳐 시를 쓴다. 시를 쓰며 그는 완전히 고립되고 고립됨으로써 시의 세계로 온전히 진입한다. 한 편 한 편 시가 노트에 채워지고 시가 시들이 되고 첫 시집을 묶어 낼 일을 비밀처럼 품어가며 패터슨은 시를 쓰는 사람이 되어 시를 쓰는 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생각 없이 살아도 휴대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패터슨은 휴대폰이 없다. 주위의 잦은 권유에도 패터슨은 휴대폰이 자신의 삶을 앗아가는 일을 경계한다. 덕분에 패터슨을 제외한 나머지는 불편하지만 패터슨이 사는 패터슨이라는 세계는 패터슨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견딜 수 있다. 패터슨은 가끔 안 괜찮고 나머지는 괜찮다.
하지만 패터슨은 트루먼 쇼라는 무대가 아니다. 사랑 고백이 거절당하기도 하고 술집에서 부부가 말다툼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 길에서 오래된 버스가 고장 나 덜컥 멈추기도 한다. 모든 인생의 드라마가 함축된 곳은 아니지만 동네 패터슨은 그렇게 돌아가고 패터슨의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삶도 그렇다. 욕심이 없다고 모든 삶이 평탄한 건 아니다. 패터슨은 고장 난 버스에서 승객의 안전과 자신의 책임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일을 겪자 휴대폰이 없는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개인의 의지가 옳더라도 사회적 책임과 격돌하며 다수를 곤란에 빠뜨릴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얼마 후 패터슨은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상처를 입게 된다.
시와 시인을 경외하며 시를 쓰는 일에 골몰했던 패터슨의 오랜 꿈은 첫 시집을 내는 것이었다. 개인의 습작 노트에 적힌 손글씨를 정제된 타이포그래피와 하드 커버, 질 좋은 내지 위에 찍어내는 일은 떠올릴 때마다 남다른 감흥으로 벅차오르게 했다. 마빈이 남김없이 갈기갈기 찢어 버리기 전까지 첫 시집 출간은 흥분을 동반하는 꿈과 희망이었다. 눈송이처럼 바닥에 흩어진 습작 노트 앞에서 패터슨은 말을 잃는다. 망연자실하여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 실의에 빠진다. 디지털 기록으로 저장되지 않은 패터슨의 습작 시들은 말 그대로 소멸되었다. 패터슨은 아마 생의 일부가 생각의 시간이 시를 쓰던 순간들의 모든 느낌들이 제거되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패터슨은 마빈을 혼내지 않는다.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는 마빈을 다그치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려 노트가 활자가 시들이 복원될 리 없었다. 마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복원될 리 없는 시어들의 궤적을 멍하니 떠올리던 패터슨에게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상실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일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패터슨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패터슨은 패터슨을 찾아온 어느 시인(나가세 마사토시)에게 빈 노트를 선물 받는다. 그 시인이 패터슨의 사연을 알리 없었다. 그가 패터슨에게 선물한 건 우연이었지만 패터슨이 그에게 받은 선물은 운명이었다. 이전의 시들은 돌아오지 않지만 패터슨의 시는 다시 쓰일 수 있었다. 여전히 패터슨 동네를 부유하는 바람과 볕 사이에서 길과 아이들 사이에서 저녁 식사와 컵케이크 사이에서 흑백 영화를 상영하는 시간과 술집 사이에서 길을 잃은 시어들이 패터슨의 펜 끝으로 모여들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가 되고 패터슨은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은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씨가 출간하게 될 첫 시집의 메이킹 필름 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