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웨이맨, 보니와 클라이드는 죽지 않았다

존 리 행콕 감독. 하이웨이맨

by 백승권






1930년대 금주법과 대공황으로 찌든 미국,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라는 살인광 커플이 경찰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다. 도청이 새로운 기술로 받아들여지던 시대, 어둠과 안개, 숲과 외길 속에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차 안에 숨어 희생양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찾을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희생자는 늘어갔고 이유는 없었다. 무기를 장전하기도 전에 경찰들은 총알을 쥔 채 죽었다. 그들의 마지막 시야에는 보니의 흐릿한 얼굴과 기다란 총구가 들어왔고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경찰들의 마지막 숨결을 빼앗아가는 순간을 즐겼다. 대공황 시대에 은행을 털고 경찰을 살해하는 범죄자 커플, 신문은 마치 영웅처럼 다뤘고 대중들은 열광하며 추앙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그들은 마치 할리우드 스크린을 찢고 나온 매력적인 커플 같았다.


미 당국은 프랭크(케빈 코스트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은퇴한 텍사스 레인저로서 53명의 사살 이력을 갖고 있었다. 프랭크는 과거의 동료 매니(우디 해럴슨)와 함께 움직이기로 한다. 화려한 과거, 불타는 정의감, 하지만 나이 든 몸은 조금만 뛰어도 숨이 벅차올랐다. 그들은 범죄자들의 고향을 살피며 탐문한다. 살인은 계속되고 있었다. 범행 장소로 달려가면 남은 건 시체와 분노, 두려움과 막막함 뿐이었다. 클라이드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은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다며 울부짖는다. 겨우 닭 한 마리를 훔쳐서 범죄의 길로 들어선 거라고. 세상이 범죄자로 낙인찍지만 않았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고. 프랭크는 어릴 적 자신의 첫 살인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죽이려던 자를 죽였던 일을. 그리고 그 선택이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음을. 프랭크는 어떤 선택이든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선택이 일으키는 파장을 선택한 자는 결코 막을 수 없다고. 프랭크와 매니가 살인의 자취를 쫓는 사이 보니와 클라이드의 살인은 계속된다.


프랭크와 매니의 수사를 가로막는 건 단순히 그들의 묘연한 행방뿐이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교주를 체포하려는 행위를 방해했다. 일부는 적극적으로 숨겨주기도 했다. 계속되는 수사 속에서도 희생자만 늘어나는 상황, 프랭크와 매니는 그들을 쫓기에 자신들이 너무 낡아버린 건 아닐지 자문한다. 그들은 밤새 운전해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친구의 머리도 단숨에 깨부술 수 있는 잔혹함을 지니고 있었다. 프랭크는 침묵했고 매니는 좌절하고 있었다. 모래 먼지 속에서 그들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서서 사라진 자동차의 바퀴 자국만 바라보고 있었다.


함정과 잠복. 클라이드의 지인을 통해 경로를 차단, 그들의 차를 멈췄다. 프랭크와 매니를 비롯한 추격대는 나란히 보니와 클라이드가 탄 차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리고 차가 완파될 지경에 이르기까지 수백 발의 총알이 보니와 클라이드에게 쏟아진다. 기관총의 탄환이 다 떨어지면 권총을 꺼내어 갈겼다. 쏘고 쏘고 쏘고 무언의 분노와 두려움, 복수심이 총구의 열기를 끝없이 달구고 있었다. 맞은 자들은 너덜너덜 넝마가 되고 쏘는 자들도 비로소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은 마침내 한 시대가 고요히 막을 내린 걸 알 수 있었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장례식은 각각 치러졌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프랭크와 매니는 본업으로 복귀해 숨을 거둘 때까지 법의 집행관으로 활동했다.


관성 (慣性) [관성]

[명사] <물리> 물체가 밖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 보통 질량이 클수록 물체의 관성이 크다.

-네이버 국어사전


관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하면 계속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일에 대하여, 살인범을 쫓기 시작하면 계속 살인범을 쫓는 일에 대하여. 인간은 어떤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서 일정 지점에 이르면 그 행위를 당연히 이어나가야 할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때에 이르면 기존 행위가 아무리 비상식적이더라도 이어나가는 것보다 멈추는 게 어려워진다. 인간이 일을 하는 게 아닌, 일이 지닌 동력이 인간을 떠밀어낸다. 주체가 뒤바뀐다. 가치판단이 흔들린다. 인간은 행위의 도구가 된다. 살인도 복수도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제어 영역을 넘어선다. 사람들은 이따금 이런 상황의 관객을 자처하며 광기를 쏟아낸다. 자신도 무대의 일부가 되기 위해 안달한다. 소용돌이를 향해 손을 뻗고 막막한 일상의 해소감으로 즐긴다. 20대 커플의 살인 투어는 만인의 예능이 된다. 당연한 것이 된다. 살인, 추적, 열광. 여전히 회자되는 과거의 이벤트에 넷플릭스가 가세한다. 하이웨이맨은 넷플릭스가 선택한 관점이자 잘 나갔다고 여기는 과거를 반추하는 유료 가입자들을 위한 텍사스 레인저스 팬클럽의 이름이다. 어떤 관성은 이렇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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