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카드, 인간을 다루는 방식

로빈 라이트 주연.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6

by 백승권

인간은 도구다. 사고하는 두뇌와 힘 조절이 가능한 팔다리를 지녔다. 목적에 따라 기능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스스로 사고한다는 변수가 있지만 제어 가능하다. 그렇다. 제어할 수 있다. 스스로 사고한다는 변수는 착각이기 때문에. 완전히 스스로 사고하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영향을 받는다. 반복적으로 영향을 받으면 변형된다. 변형되지 않는다는 방어적 사고가 작동하지만 작동하는 순간조차도 변형은 진행된다. 도구는 목적에 따라 변해야 한다.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져야 한다. 인간은 다루기 쉽지 않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도구다. 여기서 가치란 도구화를 꾀하는 주체를 위한 가치다. 무조건 공익을 우선으로 할 필요가 없다. 테러범에겐 폭탄, 살인자에겐 총과 칼, 권력자에겐 인간이 도구다. 인간을 완전히 도구화하면서 권력은 최종 목적을 향해 멈추지 않는다.


인간을 도구로 인지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인간을 도구처럼 활용하는 과정이다. 흔히 인간이 인간을 도구화한다면 어떻게 같은 인간을... 너무 비인간적... 양심에 가책... 등의 감정이 들 수 있다. 감정이 문제다. 감정이 없다면 해결될 문제. 도구를 주체자와 같은 지위로 볼 때 판단은 흔들린다. 도구화는 실패한다. 자신과 동급의 대상을 도구화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자신도 도구 또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종관계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 나는 주, 상대는 종. 상대는 그렇게 도구가 된다. 이 원칙이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상황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감정 없이 상대를 도구화할 수 있다면 다음엔 배치만 하면 된다. 임무만 부여하면 된다. 불 속으로 집어넣으면 된다. 대신 총알을 맞게 하면 된다.


자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도구는 문제를 일으킨다. 도구가 자신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간으로 인지할 때, 주인과 같은 지위로 착각할 때, 주인의 자리를 노릴 수도 있다. 주인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심지어 도구의 주인을 도구화시키려 할 때가 있다. 도구를 버릴 것인가. 아니 버린 도구는 누군가의 도구가 되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더 업그레이드되거나 다른 의도를 갖출 수도 있다. 도구의 가치가 없어진 도구는 없앤다. 폐기한다. 파괴하고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절대 재활용하지 않는다. 일회용이라는 말은 너무 가벼운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도구라면 도구가 아니다. 경쟁자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말살한다.


도구의 지식은 양날의 검이다. 도구의 지식은 철저히 도구의 주인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이따금 도구가 자신의 지식을 뽐내거나, 이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 들 때가 있다. 주인이 불편하다면 도구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그런 도구는 필요 없다. 도구의 충성심은 늘 간단하고 명확하게 느껴져야 한다. 이게 아니라면 필요 없다. 도구의 지식은 아깝지만 등 뒤의 칼이 되는 것보다 낫다. 결론은 마찬가지다. 없앤다. 죽인다. 영원히 사라지게 한다. 오래 가까이 지내다 보면 없애기 아까운 도구도 있다.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려 뭉클하게 만드는 도구도 있다. 그런 도구에게는 정이 들거나 사랑 비슷한 감정을 나누기도 한다. 도구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때도 생긴다. 하지만 첫 번째 명제를 다시 상기하면 된다. 인간은 뭐다? 인간은 도구다. 위험요소가 감지되는 도구는? 폐기한다.


권력의 목적은 권력 자체다. 권력을 얻기 위해 만나야 할 모든 사람은 도구다. 초원에 두 마리 야수는 필요 없다. 남편이든 아내든 최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인간적인 교감조차 도구를 길들이기 위한 전략이다. 도구와 생의 일부분 같이 지낼 수 있지만 최후의 순간 하나의 의자에 같이 앉을 수는 없다. 나 외에 다른 후보는 필요 없다. 경쟁자로 인지되면 제거한다. 도구는 쓰임새가 다하는 순간 존재가치가 소멸된다. 프렌시스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는 미국 대통령이 되기까지 살인, 테러 조작, 전쟁 위기 조성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수십 년을 알고 지낸 친구조차 희생양으로 만들고 아내조차 경쟁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게 대통령이 되고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범죄를 저지른다. 주변의 모든 인간을 도구로 투입시키고 핵심 정보에 가까이 있는 자는 가차 없이 제거한다. 프렌시스 언더우드처럼 인간의 도구화에 능한 캐릭터는 없었다. 그의 아내로 남길 거부하는, 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가 다음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클레어 언더우드는 프렌시스와 더불어 거의 모든 범죄를 알고 함께 저지른다. 프렌시스 사망 후, 최고 권력을 거머쥔 순간부터 더욱 강렬한 잔혹함을 내뿜는다.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일일이 제어하지 않는다. 위협하는 요소에게 경고가 먹히지 않으면 바로 행동한다. 최고 권력은 무리의 개체수를 관리한다. 클레어에게 사랑, 우정, 행복 이런 인간적인 감정은 목적도 아니고 가치도 없다. 거슬리면 제거한다. 제거하는 과정에서 쓰인 도구도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조언하고 충성하며 정황을 알고 있는 도구도 제거한다. 이렇게 제거하다 보면 자신만 남는다. 괜찮다. 도구는 많으니까. 최고 권력의 도구가 되기 위해 긴 줄이 서 있으니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클레어에겐 상관없다. 도구(또는 Dog)의 이해 따위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