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매그놀리아
복수심이 생의 동력이 되는 순간,
과거는 영영 옭아매는 덫이 된다.
벗어나지 못한 채 몸만 늙어간다.
죄는 피해자를 낳고
죄는 끝없는 고통을 낳으며
죄는 결코 낫지 않는다.
잊히지도 않는다.
과거가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
어느 유명해진 남자는 술에 취해 딸을
성추행한 과거에서 자신을 부정한다.
내가 그랬을 리 없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지도 몰라.
딸은 평생 홀로 마약을 흡입하며
황폐한 삶으로 내몰린다.
어느 부유해진 남자는
병든 아내와 어린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온다.
어린 아들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고통받는
어미 옆을 지키며
아비에 대한 증오심과 무참한 외로움에
한없이 떨어야 했다.
상처 받은 인간의 과거에는
부모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되어 있다.
가해자와 부재자를 오가며
자식의 심장에 악의 씨를 파묻는다.
용서는 불가능하다.
무슨 소용인가,
상처 받은 자들은 이미 죽었고
여전히 죽어가고 있으며
치유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가해자들의 임종과 유언의 순간에
낮고 느린 음성으로 후회를 읊조린들
멍멍멍멍멍멍 컹컹컹컹컹컹
대체 거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같은 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대가를 치르지 못한 자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자비는 없다.
그들의 절멸만이 그들의 유일한 고해여야 한다.
모든 생엔 사연이 있겠지.
가해자에게도 사연은 있을 거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그와 비교 자체가 성립 안 되는
더 엄청난 사연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1999년 작 매그놀리아는
(성인 남자가 악마라는 설정 아래)
필연적인 죄악과 우연적인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고통만 가득한 세상에
희망은 연약하고 기회가 없다.
우릴 태어나게 한 자들이
첫 가해자이자
생애 모든 고통과 슬픔의 근원이다.